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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 유발 하라리

Chapter 2.1. 목격자와 개인 입장에서 쓴 회고록

523년 부르고뉴 백작령의 토박이인 열여섯 살의 페리 드 귀용은 당시 수습 기사로서 모시고 있던 레투알의 영주와 함께 브장송 시를 향해 길을 떠났다. 브장송은 현명하고 덕성 높은 기사이자 부르봉의 공작인 샤를이 프랑스 왕국에서 물러나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 도시 사람들은 그[부르봉 공작]를 대단히 영예롭게 맞아들였다.

 

특히 당시 그 도시를 다스리던 당시에 Danssier 영주가 그를 맞이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부르봉을 도와주고, 오랫동안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해주었다. 앞서 언급한 왕국[프랑스]의 많은 신사들이 그를 찾아와서 합류할 수 있을 만큼 오랜 기간이었다. 푸앵티외르 백작, 뢰르시 경, 륄리에르 경, 퐁프랑 경 등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주군을 따르기 위해 아내, 자식, 친척, 친구를 두고 떠나왔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페리 드 귀용이 직접 쓴 흥미로운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시점은 귀용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와 레스투알은 망명자가 된 부르봉 공작과 합류하기 위해 부르고뉴를 떠났다. 부르봉 공작은 바로 얼마 전 프랑스를 버리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휘하로 들어간 참이었다. 귀용은 이렇게 떠난 조국, 친척, 친구, 고향을 20년 뒤에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위해 오랫동안 군인으로 활약하며 보잘것없는 수습 기사의 위치에서 중간급 지휘관의 자리까지 올라가 상당한 명예와 부를 거머쥐었다.

 

귀용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등지고 위험한 모험이 기다리는 먼 땅으로 떠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 앞의 글은 첫 문장에서부터 귀용 본인과 그의 운명을 등한시하고, 대신 부르봉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글도 부르봉이 이탈리아로 가서 황제의 신하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5페이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귀용의 모습을 언뜻 다시 볼 수 있다. 부르봉이 레스투알을 가신으로 받아들인 뒤, 롬바르디에 도착한 귀용과 레스투알이 “공작님이 밀라노에서 포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모두 163페이지 분량인 이 글 중 그다음 60페이지를 할애해서 귀용은 자신이 1524~1535년에 참전한 다양한 원정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언급한 것은 특정한 장소나 사건과 관련해서 단순히 자신의 존재를 기록할 때뿐이다. 그나마 그것도 몇 번 되지 않는다. 대개 그는 자신이 묘사하는 사건의 현장에 자신이 있었는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실제로 프랑스 수비대가 밀라노에서 겪은 패배(1525년) 같은 몇몇 사건에서는 그가 현장에 있지 않았다.

 

66페이지부터 끝까지 전체 문헌의 60퍼센트에 해당하는 지면에서 귀용은 점점 더 두드러지게 존재를 드러내지만, 그래도 그의 삶이나 군인으로서의 활약을 지속적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다섯 가지 종류의 사건과 행동에 대한 설명이 섞여 있다.

 

1. 귀용이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건들. 대부분 카를 5세의 일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들이다(예를 들어, 1541년의 부다 Buda 공성전).

2. 귀용이 현장에 있었지만, 귀용 자신의 행동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사건들(예를 들어, 1567년 스페인의 프랑스 원정).

3. 원정 중에 귀용이 한 행동으로, 그 원정의 역사적 의미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 중요성이 있는 것(예를 들어, 1558년에 귀용이 지휘한 정찰 임무).

4. 원정 중에 귀용이 겪은 행동으로, 그 원정의 역사적 의미와는 상관없는 것(예를 들어, 1554년 원정을 끝낸 뒤 사부아 공작이 귀용에게 포도주 한 병을 하사한 일).

5. 원정과는 상관없는 귀용의 행동으로, 전체적인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예를 들어, 1539년 귀용의 스페인 여행).

인과관계를 버린 이야기

귀용의 글은 뚜렷한 논리 없이 이런 사건들과 행동들 사이를 오간다. 두 주인공(귀용과 카를 5세)의 행동이 당황스럽게 뒤섞여 있어서, 귀용과 황제가 이 글에서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귀용이 황제의 행동과 자신의 행동을 비교하는 대목이 많은 것도 이런 인상을 더욱 강화한다. 예를 들어, 그는 황제가 나폴리로 가서 승리를 축하하며 겨울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은 그해 겨울에 카사프리올 마을에서 비참하고 궁핍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때로는 이런 비교가 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있다. “나는 발랑시엔에 한동안 남아 있었고, 황제는 브뤼셀로 떠났다.”

 

마지막 예에 나타난 것처럼 귀용과 황제의 행동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없을 때가 많다는 점이 참으로 독특하다. 게다가 귀용은 경우에 따라 자신의 행동만 이야기하거나 황제의 행동만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일시적으로 군대에서 물러났거나 아니면 평화가 지속되는 바람에 군인으로 활동하지 않던 시기에는 그때의 일반적인 사건이나 자신의 개인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몇 년을 훌쩍 건너뛰곤 한다. 1545~1548년, 1548~1552년, 1554~1556년, 1558~1566년이 그의 글 속에서 그렇게 훌쩍 지나가버렸다. 따라서 그의 글만으로는 그의 개인사도, 카를 5세의 일생도 연속적으로 재구축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귀용의 문헌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선 귀용이 자신의 시대, 또는 카를 5세 시대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행동 중 어느 정도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들을 언급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귀용의 뜻이 그런 것이었다면, 일반적인 역사나 카를 5세와는 전혀 상관없는, 귀용 본인의 순전히 개인적인 전환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 귀용이 참여했던 사건들에 초점을 맞춘 이유가 무엇일까? 비록 전쟁이 계속되고 있더라도 귀용이 별로 활약하지 않은 시기는 그냥 건너뛴 이유가 무엇일까? 문헌의 뒷부분에서 전체의 60퍼센트에 해당하는 분량 중 많은 지면이 귀용의 개인적인 행동에 할애된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는 심지어 역사적인 의미가 전혀 없어 보이는 행동들도 포함되어 있다.

 

귀용이 1542년에 말을 사려고 안달루시아에 다녀온 이야기를 네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묘사한 부분을 예로 들어보자. 이 문헌에서 군사원정이나 전투에 대한 묘사도 이보다 길고 자세한 경우는 없다. 귀용은 자신의 여정을 자세히 밝혀놓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구입한 다양한 말의 목록, 말들을 구입한 장소와 각각의 구입 비용을 일일이 적어두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페리라고 명명한 말을 산 이야기를 할 때는 대단한 애정을 보이기도 한다. 이 말은 나중에 궁정에서 최고의 말이 되었다. 파크라고 명명한 또 다른 말은 그가 잉골슈타트 앞에서 잃어버린 것으로 적혀 있다. 이어서 그는 “그 다음에 나는 카뮈를 샀다. 내 평생 그렇게 훌륭하고 충성스러운 말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구입한 말들 중 한 마리가 죽었을 때 너무 슬픈 나머지 열병에 걸려 덩달아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이야기가 전체적인 역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비슷한 맥락에서, 생캉탱 전투를 묘사할 때 귀용이 전투의 전체적인 흐름은 겨우 몇 문장만으로 끝내버리고, 전투와는 별로 상관없는 자신의 행동을 지극히 자세히 묘사한 이유도 알 수 없다.12 1566년에 그가 마르시엔에서 소규모 개신교도 무리를 직접 물리친 이야기13에 네 페이지를 할애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문헌에서 그 어떤 군사행동도 이 소규모 교전만큼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귀용은 1560년대에 현재의 베네룩스 지역에서 벌어진 종교적, 정치적 혼란에 단 한 문장만을 할애했다. “여러 분파와 이단 때문에 나라가 크게 분열되었다.”

 

그렇다면 귀용의 글은 귀용 자신이 목격자로 등장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의 목격담이라고 보아야 할까? 하지만 이렇게 보면, 귀용이 직접 목격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설명까지 포함되어 있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귀용이 목격자에 불과하다면, 왜 귀용의 행동과 황제의 행동이 글 속에서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왜 역사적인 의미가 없어 보이는 개인사를 그토록 자세히 풀어놓았을까?

 

그렇다면 이 문헌은 귀용의 인생을 담은 글이고, 역사는 단순히 배경으로만 등장하는 걸까? 그러면 왜 귀용의 이전 인생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이, 그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휘하에 들어가는 장면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을까? 왜 그의 가정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을까?(말 馬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적혀 있지만, 아내와 여덟 자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왜 평화로운 시기에 귀용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해주지 않을까? 글의 앞부분 40퍼센트에 해당하는 분량에서 귀용이 등장하는 부분이 왜 그렇게 적을까? 귀용이 참여하지 않은 원정까지 수많은 군사원정의 역사가 왜 그토록 중요하게 다뤄져 있을까? 그런 원정에서 귀용이 수행한 역할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는 경우가 왜 그렇게 많을까?

 

그렇다면 이 글은 귀용이 군인으로서 활약한 이야기만을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할까?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등장한다. 귀용이 때로 현장에서 목격하지 못한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것, 앞부분 40퍼센트에서 귀용 본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 후반부 60퍼센트에서도 그가 자신의 이야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다양한 군사원정이나 황제의 행동에 대해 서술할 때가 많은 것. 이런 부분들이 귀용 본인의 군사적 활약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배경으로만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지 않고 원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더라도 그 행동의 맥락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예를 들어, 마르시엔에서 그가 승리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귀용의 글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귀용의 글은 일반적으로 ‘군인회고록 military memoirs’으로 분류되는 종류다. 귀용이 글을 쓰던 무렵에 서유럽에서는 이런 종류의 글이 상당히 많이 작성되었으며, 저자들 또한 거의 모두 귀용과 같은 전사 귀족 warrior noblemen이었다. 이런 글의 몇 가지 공통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이야기하겠다. 이런 글들은 귀용의 글과 마찬가지로 역사와 개인사 사이를 오갔다. 이 책에서 나는 1450년부터 1600년 사이에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로 작성된 군인회고록을 깊이 연구해서 이 글들의 정체를 확실히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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