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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 유발 하라리

Chapter 1.0. 예고편

[예고]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역사 속 '나'의 의미를 찾아서 역사 속 나의 의미를 찾는 여정

 

유발 하라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그는 널리 알려진 미래학자이자 사상가다. 그런데 그의 이력에는 역사학자, 더 자세하게는 중세 전쟁사 전공자라는 소개가 빠지지 않는다. 미래학자와 역사학자. 이 두 분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사피엔스》는 거시적 안목에서 역사를 다루고 있고, 중세 전쟁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그가 어떻게 해서 아주 특수한 분야에 속하는 중세 전쟁사에서 인류 역사 전체를 다루는 빅히스토리로 옮겨간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아주 세밀한 분야로 역사에 입문했지만,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역사를 바라보고자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영향을 미쳤다는 정도를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식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에 관한 단서를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얻을 수 있는데, “나는 누구인가?”(20장)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그는 삶의 의미와 세상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고, 답을 얻기 위해 학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하여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병사들의 자전적 기록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21장)고 했다. 그렇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그 이후에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대한 관찰, 혹은 통찰을 통하여 인류 전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선보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나는 누구이며 삶의 의미와 세상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결국 하라리의 출발점은 나 자신과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었고, 이에 대한 잠정적인 답변이 바로 그의 박사논문인 이 책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하라리의 독자적 역사 해석의 출발점이다. 앞서 하라리의 질문은 ‘나’와 ‘세상’의 의미라고 했다. 《사피엔스》를 비롯한 ‘인류 3부작’이 ‘세상의 의미’를 구하려는 시도였다면, 이 책은 ‘나의 의미’를 탐구하는 셈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하고,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라리의 3부작 역시 세상이 지금까지 어떻게 변해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많은 독자들이 역사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히 독자들에게 묻건대, ‘우리’의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우리’의 좌표를 알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되기는 했는데, 독자 자신의 삶의 의미는 발견했는가? 우리의 좌표를 알아내기는 했는데, 나의 좌표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이며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애초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는가 말이다.

이 책은 바로 ‘우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이전,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진 하라리가 잠정적으로 얻은 답변이다. 물론 책에 ‘나의 의미’에 대한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와 우리의 구분선을 찾아보고, 그 둘은 어떤 점에서 갈라지는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리고 진정한 나는 어떻게 관찰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박사학위 논문이므로 중세사 연구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것들을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독자들은 중세사 전공자들이 아니므로,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미리 알아두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통념들이 있다.

 

 

 

1. 무엇보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근대와 중세는 뚜렷이 대비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근대 사회의 중심 원리는 합리성, 혹은 이성이다. 이러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이성을 가진 개인individual으로서,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불가분의in-divide 존재다. 이러한 개인은 르네상스 시대(15~16세기)에 처음 등장했다. 그 이전에는 이러한 개념의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신앙의 시대인 중세 시대(5~15세기)에 인간은 공동체의 일원일 때에만 의미를 가졌다. 당시 인간은 두 번 태어나는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첫 번째는 생물학적 탄생이고, 두 번째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사회적 탄생이었다. 예를 들어,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중세인에게 한다면 “나는 어느 집단이나 공동체 소속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따라서 나의 정체성은 곧 집단이나 공동체의 정체성과 같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은 근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2. 정치와 권력관계 측면에서도 근대와 중세는 대비된다. 중세 시대에는 권력이 분산되어 있어서 왕이란 일개 귀족에 불과했고, 왕국이란 이름뿐이었다. 자연히 귀족들은 각 지역에서 왕과 같은 권력을 누렸다. 특히 무력의 행사에 있어서, 귀족들은 전사였으므로 모든 전사들은 동등한 권리를 지녔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관계 및 무력의 행사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왕에게 집중되었다. 이때 왕이 무력과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근거는 국왕만이 전체의 이익, 혹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테제였다. 바꿔 말하면 귀족들은 전사로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물론 근대와 중세를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다. 오늘날 이러한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위에서 제시한 통념에 근거해본다면, 회고록이란 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혹은 그때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기록할 만한 것들을 쓴 문헌이다. 그렇다면 르네상스 시대의 회고록을,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 바라본 최초의 근대인이 남긴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라리는 이런 통념에 반대하며, 이 책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개인과 인간에 대한 생각들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군인들의 회고록을 통해 보여준다.

회고록은 일어난 일을 그대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역사에 가깝지만, 그 내용을 개인이 기억할 만하다고 판단한 개인의 행위가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사에 불과하다. 그러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에서 기억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전사 집단의 가치다. 그러므로 선택되는 내용들은 대체로 영웅적 행위이며, 영웅적 행위라면 자신의 것이든 다른 사람의 것이든 상관없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달리 역사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웅적 행위가 아니라면, 즉 전사의 입장에서 기억되어야 할 만한 일이 아니라면 건너뛰기 일쑤다.

 

무엇보다 사건 전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인과관계는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인과관계가 필요 없으므로 연대순으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다. 오직 영웅적 행위만이 개인적인 감정의 개입 없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놀라운 사실은, 르네상스 시대의 전쟁 회고록들은 모두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모든 전쟁 회고록은 세세한 사실관계에서만 차이가 날 뿐 실상 동일한 행위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장소와 시간만 다른 영웅담을 당시의 군인들은 왜 썼을까? 하라리는 이를 오늘날의 스포츠에 비유한다. 즉, 축구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경기의 상세한 내용이지 축구라는 경기의 탄생 배경이 아니다. 누가 어떻게 골을 넣었는지가 중요하듯이,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에서도 누가 어떤 무훈을 세웠는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이 회고록의 주된 독자층은 지휘관과 전사들이다. 그러므로 이 유형의 글은 개인의 회고록이라기보다는 전사 집단의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사 공동체의 가치를 구현하고 자신이 그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은 중세적 가치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근대적 개인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의 이러한 특징을 뚜렷이 보여주기 위해 하라리는 20세기의 전쟁 회고록과 비교 분석한다. 20세기의 전쟁회고록은 개인의 감정이 중요하게 다룬다. 전장의 경험 또는 전쟁에 맞닥뜨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주요 내용을 이루며, 이에 따라 전쟁 자체의 불필요함을 역설하는 경우도 있다. 주된 독자층 또한 특정 집단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다. 따라서 20세기의 전쟁 회고록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과 자아에 대한 성찰을 기록한 것으로서, 이때 개인은 근대인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이 사라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서가 아니다. 17세기에 중앙집권 국가가 등장하면서 왕조의 우수성이나 민족 영웅의 빛나는 행위를 내세우는 이야기(민족 영웅담)에 자리를 내주었다.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이나 민족 영웅담이나 모두 무훈과 무력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에 등장하는 전사 귀족이 무력을 사용한 목적은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인데 반해, 민족 영웅담은 민족 전체, 즉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한마디로 전사 귀족들은 사적인 목적을 위해 무력을 휘두르는 반면, 민족의 영웅은 공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따라서 르네상스 회고록은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리가 전사 귀족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민족 영웅담은 폭력을 근대 왕정국가가 독점해야 함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르네상스 전사 귀족의 회고록은 폭력을 독점하려는 왕정에 대한 저항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사 귀족의 이러한 노력은 실패했고, 왕정과 국가는 폭력을 독점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 영웅담을 만들어냄으로써 ‘우리’ 모두를 위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역사에서 명예를 위한 ‘개인사’를 분리해내고, 마침내 역사를 독점했다.

 

근대의 역사는 개인의 무용담을 모아놓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영웅의 위대한 업적들이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영광스러운 현재를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즉, 공공의 이익과 민족 전체의 운명을 짊어진 영웅의 위대한 업적들의 결과로 왕조와 민족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인과관계의 총합이 된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 전사나 지휘관 집단이 아니라 대체로 하급 군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경험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든 기록자가 될 수 있었다.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폭력의 권리를 가져올 수는 없지만 폭력이 행사되는 방식에 대한 경험과 느낌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영웅의 이야기로 대표되는 공식적인, 혹은 ‘우리’의 역사 대신 개인의 역사, 혹은 ‘나’의 역사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근대 국가 체제 아래에서 기억할 만한 것을 결정하는 기준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개인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역사는 기억의 역사라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 책에서 하라리가 구분하고 있는 역사와 개인사의 구분을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해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듯하다. ‘역사history’는 ‘우리’가 기억할 만한 것들의 이야기인 반면, ‘개인사lifestory’는 ‘내’가 기억할 만한 것들의 이야기다. 하라리가 이미 《사피엔스》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는 이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19장). 이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의 첫걸음으로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을 음미해볼 것을 여러분에게 권한다.

 

2019년 7월

박용진

 

 

 

감수자 박용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세 프랑스사, 유럽 도시사 및 중세인의 세계관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 《도시로 보는 유럽통합사》(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기적을 행하는 왕》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중세 말 유럽인들의 아시아에 대한 이미지와 그 변화〉 〈자서전과 중세사회의 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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