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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 A. J. 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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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초인종이 울렸을 때,

10월 27일

수요일

 

팔다리가 긴 소년이 207번지 현관에서 튀어나왔다. 그 모습이 흡사 출발선에서 튀어나가는 경주마 같았다. 그는 길을 따라 동쪽으로 질주하며 우리 집 현관을 지나쳤지만, 정확히 보지 못했다.

밤늦도록 〈과거로부터〉를 보느라 깨어 있던 나는 와인을 한 잔 더 마시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나는 금발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한쪽 어깨에 걸쳐 있던 가방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는 이내 사라졌다.

나는 와인을 단숨에 들이켜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내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니콘을 집어 들었다.

207번지의 부엌에서는 건장한 아버지가 TV 화면에서 나오는 빛을 받으며 앉아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눈에 대고 줌인했다. 투데이쇼였다. 잠시 고민했다. 카메라를 내리고 우리 집 TV를 켜서 이웃과 같은 방송을 시청할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 앉아 렌즈 너머로 그의 TV를 시청할 것인지를 두고.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건물 정면을 본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지만, 구글이 스트리트뷰를 제공해주었다. 하얗게 회반죽을 바른 벽, 희미하게나마 보자르풍*이 느껴지는, 망대望臺가 꽂힌 집이다. 여기서는 집의 한쪽 면으로 시야가 국한된다. 동쪽 창을 통해 부엌과 2층 응접실, 그리고 그 위의 침실을 포착할 수 있다.

어제 한 무리의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TV와 소파, 오래된 장식장들을 들여왔다. 남편이 모든 것을 지휘했다. 그들이 이사 온 밤 이후로, 부인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생겼을지 매우 궁금해졌다.

 

초인종이 울렸을 때, 나는 막 ‘루크앤드롤’을 상대로 체크메이트를 외치려던 참이었다. 나는 발을 질질 끌며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버저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매우 급박해 보이는 지하층 세입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턱이 긴, 잘생긴 청년이었다. 깊고 어두운 눈빛은 어두운 통풍구를 연상시켰다. 늦은 저녁에 보면 헨리 폰다처럼 보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본인 역시 종종 찾아오는 여자친구들을 이 소재로 웃기곤 했다. 나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소리가 들렸으니까.)

“오늘 저녁에 브루클린으로 외출해요.” 보고였다.

나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알았어요.”

“떠나기 전, 제가 해드릴 일이 없을까요?” 방금 그 말은 꼭 누아르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들린다. ‘그냥 언질만 주시죠.’

“괜찮아요. 고마워요.”

* Beaux-Arts, 고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프랑스 건축과 미술.

 

그는 나를 지나쳐 집 안을 곁눈질한다. “전구 갈아드릴까요? 안이 어두운 것 같아요.”

“나는 이 정도로 까만 게 딱 좋아요.” 내가 대답한다. ‘남자도 자고로 마찬가지죠’라고 덧붙이고 싶다. 영화 〈에어플레인〉에 나온 농담이던가? “나가서……” 재밌게 노세요? 좋은 시간 보내요? 한 명이라도 건지길?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가 몸을 돌려 나간다.

“지하층으로 바로 드나들 수 있는 문 있는 거 알죠?” 나는 부러 신나는 척 소리를 질렀다. “나야 뭐, 집에 있긴 할 테지만.” 그가 조금이나마 웃기를 바라면서.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두 달 정도 지났

지만, 나는 데이비드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을 나선다. 나는 문을 닫고, 이중으로 걸어 잠근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본다. 눈가에 쐐기처럼 박힌 주름. 어깨까지 늘어진 검은 머리칼은 군데군데 희끗해져서 볼품이 없다. 겨드랑이 털이 무성해지고 뱃살이 늘어진 지 오래다. 허벅지는 울퉁불퉁하다. 피부는 암울할 정도로 창백해서, 팔다리의 핏줄이 보라색으로 드러났다. 꺼지고, 얼룩지고, 무성해지고, 주름진 몸. 운동이 절실하다. 한 때는 나도 나름 매력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에드를 포함한 몇 명에 불과했지만. “옆집 소녀 같은 매력이 있었지.” 우리의 관계가 끝날 때쯤, 에드는 슬프게 말했다.

나는 바닥을 긁어대는 발가락들을 내려다보았다. 길고 가느다란, 그나마 내 몸뚱이에서 매력적이라고 할 만한 유일한 이 부위가 작은 육식동물 같은 몰골이 되었다. 나는 약장을 열어 내부를 샅샅이 뒤진다. 약병들이 토템폴*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 나는 그 틈에서 손톱깎이 하나를 발굴해낸다. 마침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하나를 찾아낸 것이다.

* Totempole,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토템상을 세울 때 쓰는 기둥.

 

10월 28일

목요일

 

어제 매매증서가 올라왔다. 새 이웃의 이름은 알리스타 러셀과 제인 러셀이었다. 두 사람은 저 누추한 집을 장만하느라 345만 달러를 지불했다. 구글은 알리스타 러셀이 보스턴을 기반으로 하는

중견 컨설팅 그룹의 임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내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검색창에 제인 러셀*을 쳐보면 알리라.

그들은 참으로 활기 넘치는 동네를 골랐다.

길 건너 밀러 부부의 집은—이곳에 발을 들인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남쪽 창을 통해 보이는 다섯 가구 중 하나이다. 동쪽으로는 일란성 쌍둥이인 그레이 자매—우리는 ‘희끗한’의 의미를

담아 이들을 그렇게 불렀다—의 집이 있다. 두 집은 창문에 같은 처마장식이 둘러져 있고, 현관문 역시 같은 초록색이었다. 오른쪽 집에는—이쪽 그레이가 더 희끗해 보였다— 헨리 바서먼과 리사 바서먼 부부가 살았다. 오래된 주민들이다. “벌써 사십 년이야, 해

마다 숫자가 늘고 있다우.” 우리가 이사 오던 날, 바서먼 부인은 자랑을 늘어놓았다.

* 작중의 제인 러셀은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제인 러셀(Jane Russell, 1921~2011)과 동명이인이다.

 

그녀는 우리에게(정확히는 ‘우리 면전에 대고’) ‘한 때 진정한 이웃을 이루고 살았던 이곳’에 여피족이 또 이사 온 것에 대해 그녀(그리고 ‘그녀의 헨리’)가 얼마나 분개하고 있는지 말해주기 위해 우리를 방문했었다.

에드는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댔고, 올리비아의 토끼 인형은 여피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날 이후 바서먼 부부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물론, 한때 여피‘족’이었던 우리 가족은 이제 나 혼자가 되었지만. 그들 부부는 심지어 옆집에 사는 또 다른 그레이 자매의 식구들과도 잘 지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10대로 보이는 쌍둥이 딸 두 명과 M&A 부티크에서 일하는 남편, 열성적인 북클럽 운영자인 부인으로 이뤄진 가족이었다. 이달의 책은, 공지사항에 올라온 대로 《무명의 주드》*였다. 중년 여성 여덟 명이 거실에 모여 앉아 토론하고 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북클럽의 일원이 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커피 케이크(익숙하지 않은 요소다)와 함께 와인(익숙한 요소다)을 홀짝이는 모습. “주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애나?” 크리스틴

그레이가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소 모호한 지점이 있다고 대답할 것이고, 우리는 웃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들이 지금 웃고 있다. 나도 저들과 함께 웃으려고 해본다. 그리고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켠다.

밀러 씨네 집 서쪽으로는 다케다 가족이 산다. 남편은 일본인, 부인은 백인으로, 그 아들은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이는 첼로를 연주했는데, 날씨가 따뜻할 때면 문을 죄다 열어놓고 첼로를 켰다.

* Jude The Obscure, 영국의 작가 토마스 하디의 유작으로, 한국에는 《비운의 주드》로 소개되었다.

 

그러면 에드는 우리 집 창도 열어젖혔다. 오래전, 6월의 어느 밤, 나와 에드는 바흐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추었다. 에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에드는 길 건너 소년이 연주하는 선율을 따라 손가락으로 나를 두드렸다. 우리는 그렇게 부엌에서 춤을 추었다. 이번 여름에도 소년의 선율은 우리 집 거실 창문을 공손히 두드렸다. 문 좀 열어주세요. 하지만 나는 열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절대로 창문을 열지 않는다. 절대로. 하지만 소년의 선율은 낮고 조용한 소리로 다시 청한다. 문 좀 열어주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다케다 씨네 집 측면에 위치한 206번지에서 208번지에 이르는 저택은 두 동짜리 적갈색 사암 건물로, 현재는 비어 있다. 지난 11월, 한 유한법인이 두 채 모두 구입했다는데, 이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거의 일 년 가까이 공중정원처럼 집 앞에 매달려 있던 공사용 작업발판은 어느 날 사라졌고(에드와 올리비아가 떠나기 몇 달 전의 일이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포착되지 않았다.

남쪽으로 보이는 나의 제국과 백성들을 보라. 그들 중 나의 친구는 없었다. 나는 그들 중 누구도 한 번 혹은 두 번 이상 만난 적이 없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나는 그렇게 치부해버린다. 아마도 바서먼 아주머니의 말이 맞았으리라.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몹시 궁금하다.

우리 집 동쪽으로는 텅 빈 가톨릭 스쿨이 인접해 있다. 정확히 말해 등을 맞대고 있다. 세인트 딤프나 스쿨은 우리가 이사 온 후 문을 닫았다. 우리는 올리비아가 못된 짓을 할 때마다 그 학교에 집어넣겠다고 협박하곤 했다. 떨어져나간 사암 벽돌, 더러워진 창문. 어쩌면 이런 것들조차 예전의 기억일지 모른다. 그곳을 관찰한 것도 이미 오래전 일이니까.

그리고 서쪽으로는 바로 공원이 있다. 아주 작은, 집터 두 개 정도 크기의 공원으로, 벽돌을 놓아 만든 좁고 으슥한 길이 우리 집 방향의 거리와 북쪽으로 난 길을 연결해주었다. 길 양쪽으로 경비처럼 서 있는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은 불타는 듯 붉은색이었다. 땅에 붙어 있다시피 나지막한 철제 담장이 길 양쪽을 에워쌌다. 중개업자 말대로, 매우 기이한 모양의 공원이었다.

 

그리고 공원 너머에 바로 그 집이 있다. 207번지. 두 달 전, 집을 팔아치운 예전 집주인은 재빨리 짐을 싸서 남쪽 베로 비치에 있는 실버타운으로 가버렸다. 알리스타와 제인 러셀을 검색해볼까.

제인 러셀이라니! 나의 물리치료사는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라고 내가 알려주었다.

“그래봤자 저는 모른다니까요.” 비나가 대답했다. 그녀는 나보다 어리다. 아마 그래서 그럴 것이다.

여기까지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논쟁이 붙기도 전에, 그녀는 나의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로 포개어버렸다. 나는 오른쪽으로 뒤집어졌다.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었다. “햄스트링에 필요한 동작이죠.” 비나는 나를 안심시켰다.

“이 못된…….” 나는 숨을 헐떡였다.

그녀는 바닥에 대고 내 무릎을 눌렀다. “살살 해달라고 저한테 돈을 내는 게 아니잖아요.”

나는 움찔했다. “혹시 돈을 내면 여기까지만 하고 나가줄 건가요?”

비나는 내가 내 삶을 저주하게 하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것이 분명하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자신의 섹스 모험담을 들려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매주 업데이트되는 그녀의 이야기는 실로 내 생활만큼이나 놀라웠다. 물론 비나의 경우, 모든 것이 그녀가 까다롭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이 어플에 들어오는 남자들의 절반은 오 년 된 사진을 써요.” 불평을 늘어놓는 비나의 머리칼이 어깨 너머로 폭포처럼 쏟아진다. “나머지 절반은 유부남이고, 또 나머지 절반은 아직 혼자인 이유가 보이죠.”

그러면 도합 1과 2분의 1이었지만, 자기 척추를 누르고 있는 사람과 셈을 두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한 달 전 틴더에 가입했다. “그냥 보려고.” 나 자신에게 한 변명이었다. 비나의 말에 따르면, 틴더는 언젠가 마주쳤던 사람들과 연결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어느 누구와도 마주친 적이 없다면? 만약 당신이 수직으로 정렬된 4,000평방피트 내의 똑같은 장소에서만 돌아다니고, 그 너머로 가지 않는다면?

나도 알 길이 없다. 내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프로필은 데이비드의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정을 삭제했다.

제인 러셀을 흘끗거린 지 나흘이 지났다. 그녀는 미사일 같은 가슴과 말벌처럼 잘록한 허리를 지닌 오리지널 제인 러셀과 같은 비율을 자랑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은 어제 아침에 한 번 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건장한 어깨와 칼자국이 난 눈썹, 날카로운 콧대를 지닌 남편만은 항상 눈에 띄었다. 부엌에서 계란을 풀거나, 응접실에서 책을 읽거나, 가끔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침실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관람할 수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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