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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 A. J. 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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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공원 건너편에는 아무 인기척이 없군.

10월 25일

월요일

 

영구차처럼 음산한 기운을 내뿜으며 천천히 들어온 차 한 대가 어둠 속에서 후미등을 밝히고 서 있다. “새로 이사 왔나 봐.” 나는 딸에게 말한다.

“어느 집?”

“공원 건너편. 207번지.”

그들은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 거기 서 있다. 황혼 속 어른 거리는 모습이 마치 유령 같다. 차 트렁크에서 박스를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아이가 후루룩 소리를 냈다.

“뭘 그렇게 먹니?”

오늘은 중국 음식을 먹는 날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아이는 볶음국수를 먹는 중이다.

“볶음국수.”

“엄마랑 말하는 중에 그렇게 먹으면 안 되지, 안 되고말고.”

“으응, 엄마.”

아이는 다시 후루룩 빨아올리고 우물거렸다. 이것은 아이와 나 사이의 줄다리기였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는 엄마를 속 좁고 막말하는 사람으로 만들곤 했다. “그쯤 해둬.” 에드가 말했다. 이러면 또 에드만 아빠 대접을 받겠지.

“가서 인사라도 하면 좋잖아.” 올리비아가 제안한다.

“저도 그러고 싶군요, 꼬마 아가씨.” 나는 건너편이 조금 더 잘 보이는 2층으로 올라간다. “어머, 여기저기서 호박을 내놓았네. 집집마다 한 덩이씩 내놨어. 그레이 씨 댁은 네 덩이나 되고.” 나는 손에 잔을 들고, 와인으로 입술을 적시며 층계참으로 나왔다. “올해는 우리도 호박 하나 해야 하지 않을까. 올리비아, 아빠한테 가서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봐.” 나는 와인을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아니면 너 하나, 나 하나, 두 덩이 할까?”

“좋아.”

나는 어두운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힐끗거리며 아이에게 물었다. “행복하니, 아가?”

“응.”

“외롭지 않아?” 올리비아는 뉴욕에 온 뒤로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 아이는 너무 작고, 너무 수줍었다.

“응.”

나는 계단 끝의 어둠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낮 동안은 머리 위 천창으로 햇빛이 쏟아졌다. 그러다 밤이 되면, 천창은 층계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커다란 눈동자가 되었다. “펀치 보고 싶지 않아?”

“아니.” 올리비아는 고양이와도 잘 지내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녀석은 발톱으로 올리비아의 손목을 동서남북으로 긁어 놓았고, 선홍빛 핏방울이 살갗에 맺히자 에드는 녀석을 창문 밖으로 집어던질 뻔했다. 녀석을 찾아본다. 녀석은 서재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보고 있다.

“아빠한테 가서 얘기해봅시다, 우리 꼬마 아가씨.” 그렇게 말하고 일어서려는데 발에 러그가 걸렸다. 라탄 소재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여기 두었을까? 라탄은 때가 너무 잘 탄다.

“어이, 주정뱅이.” 에드가 말을 걸어왔다. “누가 새로 이사 왔나봐?”

“응.”

“전에도 누가 이사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건 두 달 전이야. 212번지. 밀러 부부.”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핑그르르 돌았다.

“이번에는 어느 집이야?”

“207번지. 공원 맞은편.”

“동네가 점점 변해가네.”

나는 층계참으로 내려서서 돌아 나왔다. “짐이 많지 않은 모양이네. 차 한 대야.”

“이삿짐이 나중에 들어올 수도 있지.”

“그럴지도.”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나는 거실 벽난로 옆으로 다가섰다. 거실 한편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저기…….” 에드가 입을 열었다. “아들이 있나 봐.”

“그래?”

“아들이 있다.” 나는 차가운 창에 이마를 들이대며 말했다. 이곳 할렘에는 아직 가로등이 설치되지 않아서, 거리는 저며놓은 레몬 조각 같은 달빛에만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실루엣만은 분간할 수 있었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 키 큰 소년이 현관으로 짐을 옮기고 있었다. “중고등학생쯤 됐겠어.” 내가 덧붙였다.

“그쯤 해둬, 퓨마 양반.”

“당신이 여기 있었으면 좋을 텐데.”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에드는 의표를 찔렸는지 그 말에 주춤했고,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시간이 더 필요할 거야.” 에드가 말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의사 말이, 너무 자주 만나도 좋지 않다고 했어.”

“그렇게 말한 의사가 바로 나야.”

“당신은 그렇게 말한 의사들 중 한 명일 뿐이야.”

뒤에서 손가락 꺾는 소리가 나고, 벽난로에서 불꽃이 일다가 낮은 소리를 내며 쇠창살 안에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이웃들을 초대해보는 건 어때?” 그가 말했다.

나는 잔을 비웠다.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해두자.”

“애나.”

“에드.”

남편이 내쉬는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당신과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해.”

이번에는 내 심장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야.”

펀치가 나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나를 고양이를 들어 올려 부엌으로 갔다. 조리대 위에 있는 전화기에 자동응답을 설정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한잔 더 하기로 한다. 와인 병목을 잡은 채 나는 창문 쪽으로 돌아선다. 그리고 보도를 서성이는 세 유령을 향해 건배한다.

 

10월 26일

화요일

 

작년 이맘때, 우리는 이 집을 팔 계획으로 업자를 알아보았다.

올리비아는 9월에 입학할 미드타운 근처의 학교에 등록을 마쳐두었고, 에드는 레녹스 힐에 리모델링한 집을 구했다. “재밌을 거야.”

에드는 이렇게 약속했었다. “비데도 달아줄게, 당신 전용으로.” 나는 에드의 어깨를 후려쳤다.

“비데가 뭐야?” 올리비아가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이곳을 떠났고, 올리비아 역시 아빠를 따라갔다. 그런데 어젯밤, 무산되어버린 희망사항의 맨 윗줄이 불현듯 떠올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가족을 위한 완벽한 안식처! 완전히 새단장한 19세기 할렘의 보석, 할렘의 랜드마크! ‘랜드마크’와 ‘보석’이라는 데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19세기(이 집은 1884년에 지어졌다)’와 ‘할렘’이라는 단어 자체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완전히’ 그리고 큰돈을 들여 ‘새단장’되었다는 것 역시 보장할 수 있었다. 가족을 위한 완벽한 안식처가 되리라는 것도.

 

우리 집의 구조는 이러하다.

지하층. 중개업자 말로는 이런 구조를 다세대주택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지하층은 도로보다 아래에 있고, 한 층 전체를 쓴다고 보면 된다. 입구가 따로 있다. 부엌, 욕실, 침실에 작은 오피스가 딸려있다. 에드가 팔 년간 사무실로 사용한 곳이다. 테이블에 설계도를 펼쳐놓고, 벽에는 계약서를 붙여두었다. 현재는 세를 놓고 있다.

 

정원. 안마당 형태로, 1층을 통해 나갈 수 있다. 석회석 타일이 깔려 있고, 사용하지 않은 애디론댁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한쪽 구석에는 작은 물푸레나무가 친구 없는 10대 아이처럼 외롭게 흐느적대며 웅크리고 있다. 종종 안아주고 싶어지는 나무다.

1층. 영국인이라면 그라운드, 프랑스인이라면 프리미어라고 부르겠지만, 나는 둘 다 아니다. 물론 옥스퍼드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고 공교롭게도 지난 7월부터 온라인으로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부엌은 개방된 구조로, 또다시 중개업자의 말을 빌리면, 품위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정원이 보이는 창이 있고, 공원으로 나갈 수 있는 뒷문이 있다. 자작나무 바닥에는 포도주 얼룩이 좀 있다. 복도에는 화장실이 연결되어 있는데, 나는 그 공간을 레드룸이라고 부른다. “토마토레드.” 벤자민 무어 페인트사의 카탈로그에 나온 그대로이다. 거실에는 소파와 커피 테이블, 폭신함이 살아 있는 페르시안 카펫이 들어가 있다.

 

2층. 자료실과 서재로 이루어져 있다. 자료실은 에드의 공간이다. 서가는 등이 갈라지고 누렇게 먼지가 낀 책들로 빈틈없이 빽빽하다. 내 공간인 서재는 널찍하고 여유롭다. 체스 전쟁의 주 무대인 매킨토시 컴퓨터가 이케아 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2층 욕실이 있다. 이 공간 역시 화장실이 딸린 욕실에 붙이기에는 과분한 단어인 ‘천상의 황홀경’답게 디자인되었고, 그 이름에 걸맞게 출혈이 컸다. 다른 한켠에는, 언젠가 디지털에서 필름으로 넘어간다면 암실로 꾸밀 작정인 벽장이 있다. 하지만 이미 흥미를 잃어버린 듯

하다.

 

3층. 주인용(아마도 안주인이라고 해야 되겠지?) 침실과 욕실, 그리고 손님용 침실과 욕실 딸린 침실도 있다. 나는 올해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냈다. 침대에는 두 가지 타입의 매트리스를 제작해 넣었다. 에드 쪽 매트리스는 솜털같이 부드럽게, 내 쪽은 단단하게 제작된 침대였다. “돌바닥에서 자는 거지 저게.” 에드가 내 쪽을 가리키며 말하곤 했다.

“당신은 구름 위에서 자는 건가, 그럼.” 내가 받아쳤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키스했다. 길고, 천천히.

두 사람이 떠난 뒤, 그 암흑과도 같았던 텅 빈 시간 동안, 나는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침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불을 감고 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4층. 전에는 집을 관리해주던 사람들이 머물던 공간이지만, 지금은 올리비아의 침실과 여분의 침실로 개조되었다. 나는 밤이 되면 종종 아이의 침실을 유령처럼 드나들었다. 어느 날은 햇빛에 반사되는 먼지들의 느린 움직임을 바라보며 문간에 서 있기도 했다. 나는 몇 주가 넘도록 4층에 발을 들이지 않았는데, 그사이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피부에 닿는 비의 감촉을 잊어버리듯.

어쨌든 에드와 올리비아와는 내일 다시 얘기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공원 건너편에는 아무 인기척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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