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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 A. J. 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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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오늘은 여기까지.

이 작품은 허구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름, 인물, 장소, 사건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거나 허구적 장치로 사용된 것입니다. 유사한 사건, 장소, 단체, 인물이 존재할지라도 그것은 사실과 관련 이 없으며 우연에 불과합니다.

 

조지를 위하여

삼촌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무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요.

저는 그걸 느낄 수 있죠.

영화 〈의혹의 그림자〉에서

 

10월 24일

일요일

 

남편이 들이닥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저 여자는 이번에야말로 덜미를 잡히고 말 것이다.

 

212번지의 창에는 커튼도, 블라인드도 없다. 적갈색 타운하우스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갓 결혼한 모츠 부부가 살았다. 두 사람이 금세 갈라서기 전까지. 나는 모츠 부부와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수시로 그들의 SNS를 확인하는 사이였을 뿐. 메이시스 백화점 사이트에는 아직도 두 사람을 위한 결혼선물 레지스트리가 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식기 세트를 주문할 수 있다.

하던 얘기로 돌아가면, 저 집 창문에는 아직 천 쪼가리 하나 걸려 있지 않다. 212번지는 벌거벗은 붉은 몸뚱이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 채, 텅 빈 눈으로 길 건너편을 응시하고 있다. 나 역시 피하지 않고 그 시선과 마주한다. 그곳에는 중개업자를 게스트룸으로 이끄는 안주인이 있다. 저 집은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사랑의 장례식장이 있다면 바로 저곳일까.

그녀는 풀밭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 눈과 빨간 머리칼을 가진 사랑스러운 여자다. 등에는 작은 주근깨가 군도처럼 흩어져 있다.

남편 존 밀러 박사보다야 훨씬 아름다운 존재다. 부부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인 그는 온라인에 검색을 하면 나오는 436,000명의 존 밀러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그의 병원은 그래머시 파크 근처에 있고 보험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매매증서를 보면, 이 집에 360만 달러나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환자가 많은 게 틀림없다.

나는 그의 부인에 대해서도 거의 파악하고 있다. 그녀는 전형적인 가정주부는 아니다. 부부가 이사 온 지 8주가 지났지만, 창문이 여지껏 텅 비어 있으니 말이다. 쯧쯧. 부인은 일주일에 세 번 요가

를 하러 간다. 착 달라붙는 룰루레몬 레깅스를 입고, 한쪽 겨드랑이에 요가매트를 돌돌 말아 끼운 채 가벼운 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그리고 여기저기 자원봉사를 하러 다니는 게 분명하다. 월요일과 금요일이면, 나의 기상 시간인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집을 나서서, 5시에서 5시 30분 사이에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저녁마다 영화를 보려고 자리를 잡는 시간이다(오늘의 상영작은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이다. 몇 번째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너무나 잘 안다).

그녀가 낮술을 즐긴다는 것도 진즉에 알고 있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녀도 나처럼 아침에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할까? 하지만 그녀의 나이만큼은 미스터리였다. 물론 그녀가 밀러 박사나 나보다 어리고 날쌘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녀의 이름 역시 추측할 뿐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이 리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영화 〈길다〉에 나오는 리타 헤이워스를 닮았기 때문이다. “난 요만큼도 흥미가 없어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리타의 대사이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엄청난 흥미를 느낀다. 척추가 이루는 완만한 굴곡이나 돋아나다 만 듯한 날개뼈, 가슴을 움켜쥔 하늘색 브래지어 같은 그녀의 육체가 아니라, 그녀의 삶에 대한 흥미였다. 나같은 사람과 비교해볼 때, 그녀의 삶은 이중, 삼중으로 복잡했다.

방금 전 밀러 박사가 모퉁이를 돌았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부인이 중개업자를 잡아끌며 현관을 걸어 잠근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이례적인 일이다. 일요일이면 밀러 박사는 3시 15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예외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선량한 박사님은 보도를 따라 씩씩대며 집으로 향하고 있다. 결혼반지가 반짝이는 손이 서류가방을 든 채 앞뒤로 허공을 가른다. 나는 그의 발에 줌인했다. 잘 닦인 옥스블러드 레드 색상의 옥스퍼드화가 가을 햇살을 받으며 땅을 디딘다.

나는 카메라를 들어 그의 머리를 살핀다. 니콘 D5500에 옵테카 렌즈*를 끼우면 놓치는 것 없이 잡아낼 수 있다. 제멋대로 흐트러진 얼룩덜룩한 머리카락과 값싸 보이는 가늘고 긴 안경, 움푹 팬 볼을 뒤덮은 수염 자국. 그는 자신의 얼굴보다 신발에 더 정성을 쏟는 모양이다.

리타와 중개업자가 빠른 속도로 옷을 벗어젖히는 212번지로 돌아가보자. 나는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에서 번호를 알아낸 다음, 저 집에 전화해 그녀에게 이 상황을 알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않을 것이다. 관찰하는 것은 야생사진을 찍는 것과 같다. 그들의 삶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밀러 박사는 이제 삼십 초 후면 현관 앞에 도달할 것이다. * 옵테카 사의 고화질 망원렌즈.

아내의 입술이 중개업자의 목덜미를 훑고 있다. 블라우스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린다. 이제 네 걸음 더 가까워졌다. 다섯 걸음, 여섯 걸음, 일곱 걸음. 기껏해야 이십 초 남았다. 중개업자의 셔츠 깃 사이로 타이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녀는 빼낸 타이를 방 저쪽으로 던진다.

 

이제 십 초. 줌인으로 당기자 렌즈 주둥이가 경련을 일으킨다. 박사의 손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열쇠 꾸러미를 끌어올린다.

 

앞으로 칠 초. 리타가 한데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치자 머리칼이 어깨 위로 요동친다.

 

이제 삼 초. 남편은 계단 위로 올라섰다.

그녀는 남자의 등을 감싸 안으며 깊은 키스를 퍼붓는다.

박사가 열쇠구멍으로 열쇠를 꽂는다. 열쇠가 돌아간다.

 

나는 리타의 얼굴로 줌인한다. 놀란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소리를 들은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사진으로 남긴다.

그리고 바로 그때, 박사의 서류가방이 열린다. 서류 한 뭉치가 터져 나오며 바람에 흩날린다. 나는 박사에게 카메라 초점을 맞춘다. 그의 생생한 입 모양을 잡아내기 위해서다.

그는 계단에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번쩍이는 신발로 서류 몇 장을 고정시킨다. 풀려난 서류 한 장이 나뭇가지에 걸렸지만 박사는 눈치채지 못한다.

 

한편 리타는, 옷소매에 팔을 꿰며 머리를 정돈한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방을 빠져나온다. 그대로 버려진 중개업자는 침대에서 기어나와 주머니에 타이를 쑤셔 넣는다.

참았던 숨을 내쉬자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여태껏 내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현관문이 열린다. 리타가 남편을 부르며 계단으로 달려온다. 그가 돌아본다.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지만, 여기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녀는 몸을 굽혀 보도에서 서류 몇 장을 줍는다.

그사이 문 앞에 등장한 중개업자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다른 한 손을 들어 박사에게 인사한다. 밀러 박사도 그를 향해 손을 흔든다. 박사는 층계참으로 다가가 서류가방을 든다. 두 남자가 악수한다. 그리고 리타에게 이끌려 집 안으로 향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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