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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수유병집-글밭의 이삭줍기> -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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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메모 없이는 공부도 없다._논문 작성과 텍스트 분석2

연암 박지원은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이란 글에서 글쓰기의 핵심으로 ‘혜경蹊徑’과 ‘요령要領’을 꼽았다.
 

혜경은 ‘갈 길’이다. 글은 먼저 번지수를 잘 찾아야 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따져 아는 것이 혜경이다. 공략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 혜경이다. 총을 쏘더라도 덮어놓고 쏘면 안 되고 표적을 정확히 조준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다 맞겠지 해서 쏘아 맞는 법은 세상에 없다. 요령은 요령을 피운다는 말이 아니라, 문제의 아킬레스건을 꽉 움켜쥐라는 뜻이다. 핵심을 장악하고, 쟁점을 파악하라는 말이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이 혜경이라면, 내가 무엇을 하는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요령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저 갈 길이 분명치 않으면 한 줄도 쓰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항상 더디고 껄끄러운 것이 병통이 된다. 요령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도 오히려 성글고 새는 것을 근심하게 된다.”
 

그러니까 논문 쓰기는 갈 길을 분명히 하고, 요령을 얻는 데서 시작된다. 텍스트를 열심히 읽고 기존 연구 성과를 꼼꼼히 분석하는 것은 갈 길을 분명히 하고 요령을 얻기 위해서다.

 

 

이 과정이 잘 이루어지면, 그다음은 가설이다. 가설은 자신의 관점을 세우는 과정이다. 관점이 없으면 글도 없다.

무엇을 볼지 모르는데 무엇이 보이겠는가? 가설은 어디까지나 충실한 텍스트 읽기의 결과여야 한다. 만일 내 글쓰기가 지지부진해서 꽉 막혀 있다면, 나의 텍스트 읽기가 이 지점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로 봐도 무방하다. 이 관문을 돌파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다른 텍스트를 읽어보고, 생각의 방법을 점검해보며, 전혀 다른 분야도 기웃거려볼 필요가 있다. 다른 것을 보아야 비교의 관점이 생겨난다. 전혀 엉뚱한 다른 주제를 다룬 다른 사람의 논문에서 내 생각의 실마리가 풀리는 경우가 뜻밖에 많다. 긴장을 풀고 이완된 상태에서 여기저기 어슬렁거릴 필요가 있다. 내면의 욕구가 강하다면, 이런 어슬렁거림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의 집중을 다한다. 하지만 어슬렁거리지 않고 제자리에만 머물면 토끼 한 마리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다음은 논증이다.
 

내가 세운 가설을 입증하지 않고는 아무도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가설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논증으로 입증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다.

논증에는 증거가 필요하다. 남이 보고도 놓친 지점, 대충 지나간 부분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작은 빈틈을 예리하게 찔러야 한다. 이게 안 되면 논문을 못 쓴다. 해도 안 되면 공부를 그만두는 것이 옳다. 붙들고 고집하면 여러 사람이 피곤해진다.

 

여기서 옛사람들의 학문 방법에 대해 잠깐 음미하고 넘어가자.
 

우선 질서疾書와 이택麗澤이란 두 단어를 소개하겠다. 질서는 말 그대로 생각이 달아나기 전에 재빨리 쓰는 것이다.

공부 도중에 퍼뜩 생각이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메모를 해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메모하는 습관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생각은 섬광처럼 사라진다. 그 순간에 포착하지 않으면 아예 없었던 것과 같다.

 

공부는 텍스트 읽기의 과정에서 두서없이 떠오른 의문들을 가지쳐서 체계화하는 과정과 절차일 뿐이다. 질 높은 질문이 있어야 제대로 된 의문과 가설로 발전시킬 수가 있다. 질서란 말은 송나라 때 철학자 장재張載의 공부법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침대 옆에도 붓과 벼루를 항상 대기해놓고 생각만 나면 거기에 메모했다. 다산 선생의 그 많은 작업도 어찌 보면 이 메모벽의 결과다. 메모 없이는 공부도 없다.

 

이택은 두 개의 연못이 이어져서 서로에게 상호 물대주기를 하는 것이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고 논쟁해 문제의식을

키워주고 발전시킨다.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는 것은 폼 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선후배 간에 이런 공부의 소통을 통해 이택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다.
 

질서든 이택이든 목표는 자득自得에 있다.
 

공부는 왜 하는가?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일가를 이룬다고 한다. 일가 중에서도 센 사람이 대가다. 공부의 최종 목표는 대가가 되는 데 있다. 대가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남과 구분되는 나만의 목소리를 갖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말이다. 자득은 제 목소리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남의 목소리만 내다가, 비로소 내 목소리를 내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제 목소리는 그저 나오지 않고, 수많은 온축과 축적 속에서만 나온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흔히 간과한다.

 

정리한다.

우리는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공부는 가슴과 머리로 한다. 텍스트와 만나는 것은 가슴이 하고, 가슴이 만난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머리가 맡는다. 감수성만 뛰어나면 논리가 안 서고, 논리가 승하면 텍스트를 제멋대로 읽기 쉽다. 공부를 해서 자유로워져야지, 공부 때문에 억압을 받으면 안 된다.
 

자유로워지려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한다. 그저 되는 공부는 어디에도 없다. 고생을 많이 할수록 더 자유로워진다. 그저 먹으려들면 진짜 고생하거나 아예 고생할 일이 없게 된다. 그러자면 기본기를 다지고, 체력을 길러야 한다. 한 방에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맷집도 길러야 한다. 열심히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고 해석해서 제 생각과 남의 생각을 견줘보아야 비로소 관점이라는 것이 생긴다. 연습 중에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정작 본 경기에서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으려면 연습밖에는 방법이 없다. 남 따라 말고 저대로 하고, 그런대로 하지 말고 제대로 하며, 덩달아 하지 말고 나름대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