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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수유병집-글밭의 이삭줍기> -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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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따져서 읽고, 흔들어 읽고, 뒤집어 읽어라_논문 작성과 텍스트 분석1

논문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이 많다. 쓰긴 써야겠는데 어디서부터 쓸지,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쓸지 몰라서다. 무턱대고 자료를 모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기도 괴롭다. 논문 작성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텍스트를 장악하는 힘이다.

 

 

담론으로 읽고, 겉멋으로 읽고, 남 따라 덩달아 읽으면 텍스트는 늘 나와 따로 논다. 텍스트가 내 것이 되려면 텍스트 읽기의 주체가 남이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 논문 작성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문제를 알아야 문제를 해결하겠는데,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우선은 목표를 정하고, 방향을 설정한 후 방법론을 살펴서 구체적인 분석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 목소리를 찾고, 그다음에 남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선입견이 먼저 들어가면 내 생각을 펴기가 어렵다. 서툰 읽기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 읽기가 문제다. 들어가는 경로가 잘못되면 언제나 딴 데 가서 헤매게 된다.

 

문학 연구자에게 텍스트 분석은 기본기에 해당한다.
 

기본기가 없으면 필살기도 없다.

 

복싱도 잽과 어퍼컷이 어우러져야 스트레이트에 힘이 실린다. 리듬을 타야 한다. 처음부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스트레이트만 휘둘러대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진다. 복싱에서 주먹의 강도와 스피드보다 중요한 것은 기초 체력이요 기본기다. 맷집도 필요하다. 텍스트 읽기는 체력 훈련이요, 기본기 습득 과정에 해당한다. 이 기본기를 갖추지 않고 시합에 나가면 의욕이 앞서 폼만 잡다가 KO패하고 만다. 주먹만 휘두르다가 제풀에 쓰러진다.

 

문학 연구 현장에서 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연구자들은 텍스트를 꼼꼼히 읽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주변 담론만 공부한다. 제가 읽지 않고 남들이 어떻게 읽었는가만 살핀다. 그 결과는 기존 담론에 적당히 편승하거나, 적당히 거부하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것으로 귀결된다. 텍스트는 여전히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래서는 ‘내’ 말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문학 연구도 아니다. 문학 연구자는 역사학자와 다르다. 역사학자는 사실과 데이터에서 출발한다. 문학 연구자는 텍스트에서 출발해 텍스트에서 끝난다. 문학 연구자가 역사학자를 흉내 내면 어설퍼진다. 역사학자가 문학 연구자를 기웃거리면 공허해진다. 길이 다르다.

 

 

예전에 주자와 김인후 한시의 어휘를 분석한 논문을 보았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이라 할 컴퓨터 통계를 가지고 가장 자주 등장한 어휘를 가려서 그것을 단순 대비했다. 시도는 좋았는데 영점조준이 안 된 상태여서 통계 수치에 끌려다니다 제 말은 한 마디도 못하고 끝났다. 최근에는 역사학자가 이육사의 시를 읽은 책을 읽었는데, 온통 육사의 동선에다가 시 속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일대일로 대입해서 짜맞춘 것이었다. 이것은 논증도 아니고 폭력에 더 가까웠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이육사는 살아 있는 매 순간순간이 독립운동의 화신이라야만 했다.

 

분석이 해석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둘 다 같다.

분석이 잘 진행되어야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분석 없이 대뜸 해석의 단계로 건너뛰려 든다. 대부분 연구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해석에 똑 부러지는 내용이 없다 보니, 다 읽고 나서도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글이 되고 만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의 학회 발표에서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발표자는 저도 모를 소리를 하고, 청중은 제가 부족해서 못 알아듣나 보다 한다. 이때 발표자가 자신의 빈틈을 간파당하지 않고 청중을 현혹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은 문체다. 좀체 내용을 알 수 없는 화려한 수사로 본질을 숨기는 전략이 종종 동원된다. 절대로 결정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 책임질 말도 않고, 대충 미끄러져가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둔다. 남이 정면에서 문제를 지적하면 제 주장을 더 펴지도 않고 꼬리를 내린다. 원래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좀 튀어보려고 해본 소리였기 때문이다. 이런 글은 하나마나한 글이요, 쓰나마나한 낙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발표를 듣거나 논문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흥분을 느끼는 경우가 좀체 없다. 아니, 논문을 쓰는 과정이 경이와 흥분의 연속인 경우가 거의 없다. 논문 쓰기는 어쩔 수 없는 괴로운 노동이 된 지 오래다. 공부의 천진한 기쁨은 사라져버렸다. 왜냐? 연구자가 늘 저도 모를 소리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만 아는 소리를 하지 않고, 남이 한 얘기를 적당히 얼버무리려 드니, 기쁨이 샘솟지 않고 괴로움에 짓눌린다.

 

제 말을 좀 해보려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댈지 몰라 난감하다. 도대체 주제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오리무중에 갇혀 이리저리 헤매느라 정신이 없다. 문제를 만들어내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다른 연구를 읽어봐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렵사리 논문 한 편을 써도 그다음 논문을 쓸라치면 다시 제자리걸음이다. 한숨만 나온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읽기 훈련을 잘해야 한다.
 

꼼꼼히 읽고, 따져서 읽고, 흔들어 읽고, 뒤집어 읽어야 한다.
 

덩달아 읽지 않고 꼼꼼히 읽고, 겉만 보지 않고 속살을 보며, 대충 읽지 않고 똑바로 읽어야 한다. 잘 읽어야 해석이 가능하다. 해석이 있어야 가설이 나온다. 가설은 내가 읽기의 주체가 될 때만 생긴다.

 

 

남 따라 읽고, 덩달아 읽으면 가설은 성립되지 않는다. 가설은 일종의 질문이자 의문이다. 무슨 말인가? 과연 그럴까? 정말 그럴까? 내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그는 왜 이렇게 읽었을까? 내 식으로 읽으면 어떻게 달라지나? 질문이 의문으로 발전해야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할 수가 있다. 이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자료조사를 많이 해도 글 한 줄 쓸 수 없게 된다. 아니, 조사를 많이 하고 기존 연구 성과를 검토하면 할수록, 남이 다 해놓은 것 같아 한마디도 더할 수가 없게 된다.
 

(논문 작성과 텍스트 분석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