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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수유병집-글밭의 이삭줍기> -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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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질문의 경로를 바꿔라

인문학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다.
 

저건 뭐지? 왜 그렇지? 어떻게 할까? 질문은 의심과 의문에서 나온다. 저렇게 해서 될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의심만 하고 있으면 오리무중에 빠진다. 질문을 제대로 해야 의문이 풀린다. 논문도 질문이 제대로 서야 문제가 풀린다. 제대로 된 질문이 없으면, 남이 안 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포기하고, 남이 많이 한 것은 해볼 도리가 없어서 주저앉는다. 질문만 제대로 서면 남이 많이 할 수록 할 것투성이가 되고, 남이 안 한 것은 신이 나서 더 할 말이 많게 된다. 어떤 것이나 전인미답의 신천지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뭘 궁금해하는지를 똑바로 아는 것이 먼저다.

 

 

맨날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나 벤치마킹한다고 르네상스가 이 땅에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제시한 매뉴얼대로 하면 완전히 망한다. 공무원에게 이걸 강의하면 한두 번 끄덕이며 듣다가 나중에는 우리를 무슨 도둑놈 집단으로 아느냐고 성을 낸다. 그래도 《목민심서》에서 말한 원리나 마음가짐은 지금과 똑같다. 각론 말고 원론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옛것을 배워도 그냥은 안 된다. 원리를 배워야지, 각론이나 매뉴얼로는 안 된다. 논문을 써도 그저 쓰면 안 된다.
 

질문의 경로를 바꿔야 한다.
 

질문만 바꾸면 모든 연구 대상이 내가 처음 하는 것이 된다.
 

《숙향전淑香傳》과 《무정無情》은 완전히 다르지만 정말로 같다. 《추월색秋月色》과 《바리데기》는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무정》은 근대소설인데 어째서 고전소설과 같은가? 고전소설을 권선징악의 틀로 바라보면 모든 작품이 다 거기서 거기다. 주제는 늘 뻔한 충효열이고, 스토리는 요즘 주말연속극처럼 모두 그게 그거다. 그대로 원문을 베껴 쓰기만 해도 원고지로 2만 장이 넘는 《옥원중회연玉鴛重會緣》 같은 고전 장편 대하소설을 3년간 밑줄쳐서 메모해가며 읽고 나서, 스토리 주욱 정리해주고 주제는 충효열이더라고 선언한다면 그 3년이 너무 슬프다. 현대소설을 주제나 갈등구조, 또는 다른 키워드로 읽는다고 해도 모두 말 바꾸기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김동인이 자연주의인 것과 사실주의인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정지용이 이미지즘인지 모더니즘인지가 어째서 여전히 질문거리가 되는가?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논문 지도하는 제자가 하도 논문을 못 쓰기에 답답해서 논문 작성 매뉴얼을 겸해 쓴 책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다. 논문을 못 써서 답답한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런데 정작 대학원생들은 책을 하나도 안 사보고 기업체의 CEO들이 더 많이 사보았다. 맨날 피터 드러커 같은 사람의 책만 금과옥조로 알고 보다가 우리 것으로 된 책을 보니 속이 시원하더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논술 교사들은 논술 작성과 공부법의 핵심을 그 책에서 읽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전 콘텐츠, 인문 콘텐츠의 파워는 저자가 제 소리만 열심히 해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기 언어로 알아듣는 데 있다. 예수가 설교하자 모인 군중이 자기 언어로 알아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예수라는 말이 아니라, 인문학의 전달력이 그렇다는 얘기다. 굳이 가공하지 않아도 된다. 가공은 그다음에 필요한 사람들

이 직접 나서서 하면 된다.

 

(중략)

 

질문이 바뀌지 않으면 모든 것은 제자리걸음이다. TV 드라마는 지겹지도 않은지 재벌가 출생의 비밀, 교통사고, 기억상실증, 바뀐 신분, 배신과 파멸을 반복해서 변주한다. 주인공이 한 번은 여자고, 한 번은 남자인 것만 다르다. 시대 배경이 고구려와 조선과 현대인 것만 같지 않다. 드라마 <광개토대왕>이 <대조영>과 다른 점이 무언가? <주몽>과 <계백>의 차이도 나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나올 것들도 틀림없이 다 똑같다. 물론 소재나 배경으로 장난쳐서 다른 척은 하겠지만.

 

 

초일류기업들의 공통점을 재조립해봐도 초일류기업은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다. 합치니 따로 논다. 수술은 아무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끝마쳤는데, 다만 아쉽게도 환자가 죽고 만 격이다. 다 똑같이 했는데 왜 결과가 다른가?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동안 우리는 서양의 이론만 죽어라고 따라다녔다. 결국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골드만, 지라르, 시클롭스키, 라캉, 데리다, 비코에서 요즘은 지젝까지 열심히 따라가며 공부한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원리를 보지 않고 각론만 쳐다보면 희망이 없다.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야지, 생각의 결과를 배우면 재미도 없고 성취도 없다.
 

연암 박지원은 형形 속에 태態가 있고,

색色 속에 광光이 있다고 했다.

의미는 태와 광에 있지, 형과 색에는 없다.
 

유명 여배우가 한 목걸이나 핸드백를 내가 걸고 들면 왜 그 멋이 안 나는가?

이런 것은 참 슬픈 얘기다. 형과 색에 집착하는 한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컬러가 다르고 사이즈가 다르고 퀄리티가 다른 것이 경쟁력이었는데, 지금은 가치와 철학이 달라야 경쟁력이 생긴다. 사람들은 표피로 흘러가는 것 말고 좀 더 근원적인 깊이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인문학이 요긴해지는 접점이 생긴 것이다.
 

박지원은 또 ‘비슷한 것은 가짜’라고 말했다.

남하고 똑같이 하면 망한다.

똑같아지려면 다르게 하면 된다.
 

요즘 새로 커피전문점 내는 사람들은 망하려고 작정한 이들이다. 10년 전 그 난리였던 안동찜닭집은 남아난 게 거의 없다. 한때는 안동에 가면 아줌마들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소고깃집 내면 광우병 파동이 나고, 돼지고깃집 내면 구제역이 발생한다. 치킨집을 내자 조류독감이 돈다. 어찌해도 피할 길이 없다. 불운은 어쩌자고 나만 따라다니는 것 같다. 이런 것이 세상이다.

 

 

20세 청년이 80세 노인의 건강 비결이 궁금해서 훔쳐본다. 늙어 이빨이 없으니 죽만 먹고, 고기도 다져서 먹는다. 하루 종일 운동도 하지 않고, 절반은 잠만 잔다. 이게 80세 건강 비결이구나 싶어 그대로 하면 반년도 못 돼서 폭삭 늙어버린다. 똑같이 해서 똑같이 된 것이다. 건강을 따라 하고 싶었는데, 늙음을 따라 하게 된 것이 비극이긴 하지만. 이 말은 조선 후기 홍길주洪吉周가 한 말이다. 이런 말은 지금도 여전히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상동구이尙同求異!

 

같아져라, 하지만 달라야 한다.
 

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
 

남이 쓴 논문도 내가 쓰면 완전히 새 논문이 되어야지, 내가 쓴 새 논문이 남이 쓴 헌 논문과 똑같아지면 되겠는가? 질문이 안 서면 책을 더 많이 읽든가 공부를 그만두는 것이 옳다. ‘왜? 왜? 왜?’를 달고 살아야 한다.
 

같아야 같아지고, 달라야 달라진다.

같으면 다르게 되고, 다르니까 같다.
 

이 말뜻을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