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표지, 보도자료, 동영상 등 도서 관련 자료를 차곡차곡 모아두었습니다.
검색 후 내려받으시면 편리합니다.

대변동

여인들의 중국사

2008.02.19조회:3760

여인들의 중국사
지은이 왕번강, 옮긴이 구서인 | 쪽수 325쪽 | 정가 13,000원

남자를 품을 것인가 천하를 품을 것인가!
중국정사, 패관야사, 가족연보 등 방대한 사료를 동원해 여인들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복원한 역작!

▶ 책 소개

배꽃처럼 아름답고 전갈처럼 독하다!
미모와 술수, 지략과 야심으로 천하를 움직인 여인들의 역사

■ 여인들의 시각으로 중국사를 읽는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철저하게 여성이다. 뛰어난 미모를 지녔지만 결국 그것으로 나라를 망쳤던 여인, 남성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고 전쟁터에까지 나섰던 여인, 정치를 어지럽히고 국가를 붕괴시켰던 여인, 큰 포부와 이상을 품고 국가에 헌신했던 여인, 후궁에서 암투를 벌이며 질투했던 여인, 수렴청정을 하며 정권을 농락했던 여인도 있다. 미모와 지략, 술수와 야심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여인들. 이들의 면면에서 중국사의 숨겨진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다. 글을 읽다 보면 중국사의 이 여인들은 당당한 역사의 주체로서 남성 이상으로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집필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녀들은 나라에 큰 재앙을 끼치고 멸망으로 치닫게 하기도 하고, 뛰어난 업적을 쌓아 일대 중흥을 이룩하기도 했다. 그녀들은 자신의 의지로 혹은 의지와 상관없이, 발 벗고 나서거나 또는 마지못해, 직접적으로 아니면 간접적으로, 많든 적든 역사의 진전이나 정체에 영향을 끼쳤다. 만약 이런 여인들이 없었다면, 역사책에는 모두 딱딱한 남자들의 이름만 남아 페이지마다 씩씩하고 굳센 기운[陽剛之氣]은 있었을망정 부드러운 아름다움[陰柔之美]은 사라져, 마치 푸른 숲에 꽃 한 송이 없는 삭막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여성들이 그 역사를 다채롭게 수놓은 것은 바로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황제나 영웅호걸 등 권력을 손아귀에 쥔 남성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남자를 최고 권력자로 키우기도 하고 시원치 않으면 갈아치우기도 했다. 끝내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이 모든 행위들은 권력을 향한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지만 피비린내나는 권력 투쟁의 와중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이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녀들도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살아 있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 여인들은 어찌 보면 자신의 솔직한 욕망대로 살았을 따름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신의 개성을 과감하게 드러낸 여성들 때문에 역사는 한층 더 다양해지고 풍성해졌다. 그래서 이 책에는 여성이 당당한 주역으로 활약하는 역사, 그래서 더 이색적이고 재미있는 역사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 베일 속에 감춰졌던 중국사 여인들의 면모를 낱낱이 파헤치다!

진시황의 어머니 자초부인에 대해서, 흔히 거상 여불위가 시첩으로 두고 있다가 회임시켜 진왕의 후보 가운데 하나였던 이인에게 들여보냈다는 야사가 전해지지만 지은이는 『사기』의 기록을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분석하면서 영정이 이인의 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소문에 대해 지은이는 아래와 같이 분석한다.
“조희(자초부인)가 임신을 한 채 시집갔다는 이야기는 여불위의 보호를 받기 위해 조희가 꾸며낸 계책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이인은 조나라의 인질로서 털끝만큼의 권세도 없었고, 진나라와 조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녀 역시 죽음을 면키 어려운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말처럼 재산이 많은 여불위라면 자신을 지켜줄 부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님 체면은 안 세워주더라도 부처님 체면은 세워주어야 한다’는 말처럼, 여불위가 제 자식 죽는 꼴을 그저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조희는 매우 총명한 여자였다. 비록 당시에는 여불위의 야심을 위해 시작된 일이었지만 그녀의 이러한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하는’ 방법은 여불위로 하여금 영정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나서게 하는 심리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또한 자초부인은 불안한 상황에서도 어린 영정이 반드시 진왕이 될 것이라 믿고 최고의 스승을 구하여 제왕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어머니인 자초부인의 노력이 있었던 셈이다. 그녀가 없었으면 진시황도 없었을 것이다.

서한 성제의 왕후인 조비연은 가무에 능한 미녀였다. 춤을 잘 추어, 후대의 작가가 쓴 소설에 그녀가 손바닥 위에서 ‘물찬 제비’처럼 춤추는 삽화가 들어갔을 정도였다. 조비연이 황제를 유혹하기 위해 치마 뒷단을 살짝 뜯자 치마 뒤쪽을 트는 것이 유행하여 ‘신선치마(留仙裙)’라 부르며 하얀 다리를 보일 듯 말듯하게 입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여자들의 전통복장에 뒤가 터져 있는 것은 바로 조비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궁궐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동생인 조합덕을 황제에게 바치는 엽기 행각을 벌인다. 조비연 자매는 서로 힘을 모아 황제를 색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한편 황제의 총애를 받은 다른 여인이 낳은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결국 유방이 세운 한 황실은 대가 끊겼다.

여인들 중에는 한족의 후예로 선비족의 후궁으로 들어갔다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여성 개혁가로서 북위의 위상을 격상시킨 풍태후도 빠뜨릴 수 없다. 지은이는 풍태후가 걸출한 개혁가이자 정치가라고 평가하면서 측천무후에 버금가는 여성이라고 단언한다. 풍태후의 개혁은 각 민족 간의 갈등을 완화시켰으며, 뒷날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데에도 기초를 마련했다. 그녀가 정적을 쳐서 정권을 탈취하고 부패를 척결한 방법도 후대의 통치자들에게 교훈을 주었다. 저자는 이런 평가를 덧붙인다.
“물론, 완벽한 인간은 없다. 풍태후도 사람들에게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 그녀는 황제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독한 어머니였다. 이것은 결코 떳떳하지 못한 방법이었고, 그녀의 일생에서 오점으로 남았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기회와 인연이 서로 모인 것이다. 생각해보라. 당시에 만약 풍태후가 정권을 독차지하겠다는 야심이 없었다면 개혁의 성대한 광경이 연출되었겠는가?”

또 당나라 황녀로서 티베트로 시집간 문성공주가 있다. 역사상 한족은 주변의 이민족과 끊임없이 갈등을 겪어왔으며, 한족의 통치자들은 간단하면도 거친 해결책을 동원하곤 했다. 선진시대의 견융에서 진한시대의 흉노에 이르기까지, 다시 남북조 시기에는 선비족이 장강을 마주하고 대립했다. 긴 세월에 걸쳐 전란이 이어지자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양쪽 다 정권의 안정을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일부 영명한 제왕들은 ‘화친’의 방식을 택하여 변경의 안정을 유지했는데, 한나라 원제元帝 때 흉노족 선우單于에게 시집을 갔던 왕소군王昭君도 그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오랑캐의 나라’로 시집간 수많은 한족 공주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당나라 태종 때 토번吐蕃의 순챈감포松贊干布에게 시집간 황녀 문성공주였다. 문성공주가 먼 토번으로 시집감으로써 당왕조와 토번의 변경지대는 몇십 년간 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족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장족藏族은 큰 발전을 일궈내었다. 오늘날까지도 티베트 사람들은 문성공주를 신처럼 받들며 오랜 세월 대대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명말청초에 파란만장한 인생을 경험한 기생의 이야기도 있다. 그녀의 이름은 진원원. 연기에 능했던 그녀는 오삼계와 관계를 맺었다. 오삼계는 명나라의 유명한 장수였지만 그녀를 되찾으려는 욕망에 청나라에 투항했다. 청나라에서 평서왕으로 봉해지고 명예와 부귀를 한 몸에 얻었지만 나라를 판 오삼계에게 이미 애정이 식어버린 진원원은 오삼계의 비참한 결말을 예감하고 조용한 암자로 거처를 옮겨 죽음을 면했다. 그녀는 한때 황제의 여인이 되어 최고의 권력과 부귀를 누리려 했으나 결국 권력의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

청나라 초창기에 중원 정복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는 데 큰 공을 세운 여인도 있다. 손자인 강희제를 성군으로 키워낸 그녀는 효장태후다. 그녀는 누르하치의 아들인 황태극의 부인으로서 타고난 재능과 정치적 두뇌를 이용하여 남편을 힘껏 도왔다. 그리고 나중에는 손자인 강희제가 열네 살의 나이로 친정을 시작했을 때 권신인 오배가 어린 강희제를 견제하고 나서자 할머니인 효장태후가 오배를 제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벌인다.
“강희제가 친정을 시작한 것은 열네 살 때였다. 오배는 어린 군주를 무시하여 정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면서 황제에게 권력을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더욱이 전횡을 일삼고 어린 황제를 힘으로 눌렀다. 아울러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태황태후는 손자의 권력이 위협을 받게 되자 오배를 제거할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심혈을 기울여 시나리오를 쓰고 재미있는 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을 맡았다. 그녀는 강희제에게 소년 경호대를 만들게 하고 늘 궁중에서 포고(布庫, 만주어. 현재 몽골의 씨름과 유사한 운동)를 하게 했다. 오배는 조정에 나갈 때마다 그 경호대와 마주쳤고 그들도 오배를 피하지 않았다. 오배는 강희제가 아직 어려서 놀기를 좋아한다고 판단하고는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배가 조정으로 나가는데 씨름을 하던 소년들이 왁자하게 몰려오더니 갑자기 오배를 부둥켜안았다. 오배는 그들이 장난을 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결박을 당하자 비로소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았다. 오배는 파면되어 구금되었고, 나머지 일당은 사형에 처해졌다. 태황태후는 이러한 계책으로 오배를 제거함으로써 손자의 지위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정권을 되찾은 강희제는 관리를 잘 가려 뽑고 백관들이 상서를 올리는 것을 장려해 청대 정치사에 새로운 한 장을 장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밖에도 경국지색의 대명사로 불리는 당 현종의 귀비 양옥환, 중국사 전무후무한 여제 무측천, 청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매국노 자희태후(서태후) 등 중국사를 수놓은 독특한 개성과 카리스마를 가진 여성들의 활약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 지은이 약력

지은이 : 왕번강王本剛
베이징 사범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여성의 지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역대 왕조에서 여성들의 역할과 행적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의 여성사와 관련하여 많은 논문을 썼는데, 이 책은 여인들이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꿔왔는가를 새로운 시각에서 구체적인 사실을 통해 조명한 문제작이다. 그동안 여인들의 역사는 알 듯 모를 듯 감추어져 실상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저자는 기존의 평가에 매몰되지 않고 방대한 역사자료를 바탕으로 악녀, 요부로만 알려졌던 여인들의 실체를 거대한 중국사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평가하는 작업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중국사 저술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다.


역자 : 구서인
고려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과를 수료했다.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통해 중국학, 일문학, 한문학 등 주로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폭넓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공부했으며,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중국 유학을 다녀온 뒤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한 인문서를 기획하는 한편, 중국사 관련 역사 자료를 발굴하고 번역하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 차례

머리말_ 중국사를 뒤바꾼 또다른 주역들

‘주지육림’과 ‘포락’을 연출한 홍안화수 / 달기
한 번의 웃음으로 주나라를 멸망시킨 차가운 미녀 / 포사
통일제국 진나라를 잉태한 야심가 / 자초부인
천하 영웅 한고조 유방을 조종한 여걸 / 여후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춘 한나라의 절세미녀 / 조비연
서진 ‘팔왕의 난’을 부른 냉혹한 여인 / 가남풍
천의 얼굴을 가진 북위의 정치개혁가 / 풍태후
티베트에 문명의 빛을 전파한 당나라 황녀 / 문성공주
전무후무한 중국 유일의 여황제 / 측천무후
당나라의 멸망을 부른 경국지색 / 양귀비
문무를 겸비한 요나라 최고의 군사전략가 / 소작
명나라 망국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도도한 기녀 / 진원원
청나라의 강건성세를 이룬 철의 여인 / 효장태후
청나라의 무덤을 판 권력의 화신 / 서태후

옮긴이의 말_ 여인들의 색다른 역사를 만나다



이 책과 저자에 대한 문의가 있으시면 편집부로 연락을 주십시오.
담당: 한문희(02-3668-3272) muhadong@gimmyo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