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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가 무지를 끌어가는 시대, 그리스도인에게 던지는 질문

고뇌가 없다는 것

저자 천정근
브랜드 포이에마
발행일 2016.10.17
정가 15,000원
ISBN 979-11-5809-062-3 03230
판형 무선 / 140X215mm
면수 416 쪽
도서상태 판매중
종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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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속지 마십시오, 깨어나십시오, 자라나십시오.

이제부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자기의 진실이라는 것을 향해 성장해가야 합니다.“

혼돈과 현기증, 타성에 젖은 삶을 타격하는 망치 같은 글!

 

★★★김기석 목사, 정용섭 목사, 김용민 피디, 김재환 감독 추천!

 

《평신도를 깨운다》가 처음 나온 지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우리는 어디쯤 서 있는가? 꺼끌꺼끌한 목소리, 타들어가는 호흡으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력을 다해 던지는 광야의 물음. 뜨거운 애정과 날카로운 통찰, 직설적이면서도 진부함 없는 언어로 이 시대 교회와 신자들의 갱신과 갱생을 위한 길을 천착한다. ‘속지 마십시오’ ‘깨어나십시오’ ‘떠나십시오’ ‘자라나십시오’. 사력을 다해 던지는 이 광야의 요청과 물음을 통과하지 않고서, 한국 교회는, 우리 신앙의 모습은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나 비유로 환기시키는 그리스도의 방식을 거부하는 세상은, 비유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암시를 선호합니다. 그것은 마치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이고 심오한 예술영화가 대중들에게 거부되고, 모든 것을 영상 속에서 다 처리해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잘 팔리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 겁니다. 관객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것을 영화가 다 알아서 해주듯이, 만능이 된 설교자가 전능한 방식으로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는 판단과 무엇을 해야 한다는 지침까지 일일이 암시해주는 겁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하느냐’겠지요? 그러면 다시 청중은 더 생각할 필요가 없이 딱 거기까지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식입니다. _83쪽

 

이 대목에서도 제가 강조하고픈 것이 새로운 ‘방식’입니다. 방식이란 가능성이 아니라 ‘가능함’을 말하는 겁니다. 이 가능한 방식이 제출되지 못한 상태에서 복음의 열매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마치 기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걸으라고 요구하고, 걷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뛰라고 부추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기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걸어야만 한다는 설교, 걷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뛰어야만 한다는 식의 설교가 필연적으로 율법주의와 허무주의를 낳게 한다는 겁니다. _100쪽

 

중요한 것은 지금 현존하는 나의 삶이 신의 현존의 증거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고 있느냐? 살고 있느냐?’ 주장이나 관념이나 교리가 아니라 영감, 곧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무수히 느끼다시피 감동이 어찌 억지로 일어나나요? 억지로 감동한 척하면 그것만큼 추악한 일이 없을 겁니다. 그것은 자연에 따르는 게 아니니까요. 진짜 감동이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진실한 자각 가운데서 나오는 거지요. 진정한 감동에는 일관된 이성과 책임 같은 것이 따르지만 센티멘털은 ‘그때그때 달라요’가 됩니다. _155-156쪽

 

‘믿쑵니다’ ‘할렐루야’로 신앙은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런 말들이 얼마나 쉽게 할 수 없고, 하기가 어려운 말들인지를 헤아리게 되는 게 신앙의 시작이 되는 겁니다. _253쪽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찬양하기 전에 여러분의 내면에서 울부짖는 한 영혼에 먼저 직면하십시오. 우리 주변에서 울부짖고 있는 처절한 실존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 실존적 고통을 새롭게 인식하며 거기에 반응하는 자각된 사랑 안에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수렴되어 있습니다. _264-265쪽

 

실제론 자기들이 별별 노력을 다 해놓고는 ‘하나님이 다 하셨어요!’라고 말하고, 그런 걸 좋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용기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여 지성이 생김으로써 발생하는 자기책임의 용기일 겁니다. 자기에게서 솟아나는 것이지만 그게 곧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묻고 싶습니다. 누가 여러분을 구원해줍니까? ‘하나님’이라고 너무 빨리 대답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걸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주신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과연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_277쪽

 

나는 오랫동안 내려오는 중이 아니었던가 싶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 나라는 내려오는 중이고, 내 교회도 내려오는 중이고,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도 다 내려오는 중이었다. 나는 내려오는 존재들 속에서 ‘그 꽃’을 발견하려고 두리번거린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낙망하고 절망한 자기는 결코 아니다. … 지금 내려오고 있는 중인 한국 교회와 성도들도 우리가 먼저 내려오며 보았던 정직한 성서적 인식의 ‘그 꽃’들을 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자신을 정직히 발견함으로써 각자 사상의 가을에 도달하기를. 그러면 우리는 이제부터 지난 100년간 한국 교회 번영주의와 긍정주의의 홍수가 지나며 묘혈처럼 파헤쳐놓은 기독교 예언의 서사적 맥락을 복구하는 삽과 갈퀴를 함께 잡을 수 있지 않을까? _맺음말에서

 

 

추천사

 

천정근의 글은 우리의 무뎌진 신앙적 감성을 깨뜨리는 예리한 바늘인 동시에 타성에 젖은 우리 삶을 타격하는 망치이다. 그런데 그 바늘과 망치에는 짙은 눈물이 배어 있다. 타락한 교회와 뒤집힌 역사에 대한 분노가 빚어낸 피눈물이다. 깊은 사유와 성찰로 정교하게 빚은 글 하나하나는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이다. 이런 뜨거운 가슴을 가진 글쟁이가 나의 벗이라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다.

_김기석(청파교회 담임목사)

 

악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서 광장에 맨얼굴로 나와, 세월호 유가족, 백남기 농민 가족에게 돌을 던지는. 그래도 언필칭 정의, 평화, 사랑은 온존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정의는, 승리를 지배하다가 역전되어 승리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 평화는, 부와 권력이 1퍼센트에 편중되고 그 나머지가 노예로 예속된 구조 속에 고착화되는 ‘저항의식이 소거된 상태’이다. 그 사랑은, 자기, 자기 가족, 자기 세력 아래에서만 유통되는 에고이즘의 새 지평이 됐다. 사이비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줄곧 패권을 바알로 삼아 갈릴리 예수를 상실한 기독교는 누구보다도 앞서 악귀의 친구가 됐다. 이 ‘예언을 상실한 교회’를 등진 ‘안나가 교인’을 천정근 목사가 초청한다. 현상 하나하나에서 미세한 소리를 발견한 그의 설교에는 악귀와 갈리는 참 기독교의 길이 있다.

_김용민(PD, 시사평론가)

 

한 호흡으로 쉬지 않고 읽었고, 깊은 울림이 있었다. 여기, 세상에 잘 적응해온 교회와 크리스천에게 하나님의 분노와 시대의 징조를 경고하는 변혁의 목소리가 있다. 공고한 악의 연대를 깨뜨리는 예언자의 음성을 들어보라!

_김재환(〈쿼바디스〉 감독)

 

천정근 목사는 인간과 세상과 교회를 향한 뜨거운 연민으로 영혼의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독자들이 그의 글로 인해서 정신적인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직하게 그의 글을 대면할 줄 아는 독자들이라면 어둠이 어둠인 줄도 모르는 이 어둠의 시대에 등불을 치켜들고 자기 길을 가고 있는 한 선지자의 마음과 언어를 만나게 될 것이다.

_정용섭(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 천정근 (저자)

1968년 경기도 용인 출생. 198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군복무를 제외한 날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쓰는 문청으로 보냈다. YS 정권이 들어서면서 출구 없는 환멸의 벽과 맞닥뜨리고 내면마저 황폐해져 좌절과 고난의 이 땅을 떠날 궁리를 하다 아무런 연고 없는 낯설고 먼 러시아로 병든 자신의 그림자 하나, 약 한 보따리 싸들고 1994년 훌쩍 유학을 떠났다. 1999년 모스크바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였다. 모태신앙으로 교회 안에서 성장했으나 청년기를 불가지론적 회의주의자로 보내다, 모스크바 교외의 한 수련회에 참석해 회심을 경험하고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왔다. 27세부터 교회에서 청년들에게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쳤고 거기서 한국 교회의 여러 문제적 현실과 맞닥뜨리며 고뇌하다 다시 교회를 떠났다. 이후 아내와 함께 신학적으로 자기를 규정하지 않은 구도자로서 러시아 정교회, 루터교, 러시아 침례교회, 카리스마파 교회, 신앙공동체들을 순례하며 종교적 구원의 탐구에 몰두했고, 대학원에서 톨스토이의 후기 저작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가 최후의 대작 《부활》에서 피력한 갱생의 빛을 발견했다. 귀국 후 신학을 공부하여 2006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신학은 보수, 신앙은 자유’라는 신념으로 안양에 자리한 자유인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산문집 《연민이 없다는 것》 외에 《헤아려본 세월》(공저), 논문으로 〈1880-90년대 똘스또이 중편에 나타난 종교 윤리적 관점〉 등이 있다.

 

책머리에

 

1. 다시, 평신도를 깨운다 (누가복음 23:26-34상)

2.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무엇인가 (사무엘하 21:1-14)

3. 왜 기독교인은 자라지 못할까 (마가복음 4:26-29)

4. 비유인가 암시인가 (마태복음 13:10-15)

5. 율법주의인가 허무주의인가 (마태복음 12:38-45)

6.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라 (다니엘 4:9-27)

7.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갈긴 예수 (마태복음 11:15-19)

8. 목회냐 예언이냐 _예언이 사라진 교회 (예레미야 23:16-40)

9. 영성이냐 반지성이냐 _지성이 사라진 교회 (시편 19편)

10. 실존이냐 기복이냐 _고뇌 없는 교회 (마태복음 10:1-16)

11. 목사는 투사, 성도는 혼돈 _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신명기 19:1-21)

12. 교의는 있고 고백은 없다 _기독교인이라는 비전문가 (요한복음 6:24-35)

13. 누구를 위하여 복음의 종은 울리나 (요한1서 2:7-11)

14. 답습이냐 새출발이냐 _중립의 자리를 묻는다 (여호수아 1:1-9)

15. 깨어나 프로테스탄트가 되자 (고린도후서 4:6)

16. 선민이냐 우민이냐 _가짜 역사를 넘어서 (출애굽기 12:29-30)

17. 역사의 부름에 응답한 마르틴 루터 (로마서 1:17)

18. 구령의 열정 _복음 전파냐 반복음의 전파냐 (고린도후서 5:14-17)

19. 먼저 인간이 되라 _복음 바로 세우기 (고린도전서 16:13-14)

20.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목사들에게 1 _세월호 참사에 즈음한 설교들을 바로잡는다 (누가복음 13:1-5)

21.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목사들에게 2 _사탄은 결코 사탄을 내쫓지 않는다 (로마서 12:17-13:10)

 

맺음말 

 

 

 

다시, 평신도를 깨운다!

1984년 옥한흠 목사의 《평신도를 깨운다》가 출간되어 한 시대를 풍미했다. 판을 거듭하며 제자훈련의 교과서로 널리 쓰였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한국 교회는 정점을 찍고 이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교회는, 그 교회의 신자들은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그때 깨어난 평신도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이 깨어나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그 깨어남이란 대체 어떤 것이어야 할까?

《고뇌가 없다는 것》은 자유인교회 천정근 목사의 “사상의 가을이 내뿜는 마지막 매미 소리처럼 따가운 광야의 소리” 스물한 편을 담은 책이다. 모스크바에서 러시아문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목사로서는 다소 특이한 이력의 저자는 이미 단 한 권의 산문집 《연민이 없다는 것》을 통해 그의 공부의 치열함과 사유의 진정성으로 눈 밝은 독자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고뇌가 없다는 것》은 애초 “속(屬)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목회하는 자유인교회에서 연속한 설교를 모은 것인데, 그중 일부가 〈뉴스앤조이〉에 연재되는 동안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뜨거운 애정과 날카로운 통찰, 직설적이면서도 진부함 없는 언어로 이 시대 교회와 신자들의 갱신과 갱생을 위한 길을 천착한다.

물론 광야의 따가운 햇살과 먼지바람에 실려 오는 거친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는 극히 소수일 테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자는, 그 역시 메마른 현실에서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느끼는 자일 터인데, 그 꺼끌꺼끌한 목소리에 정신을 덮고 있던 수건을 걷어내게 된다.

 

‘호리병 속에 갇힌 괴물’의 고뇌

복음에 붙들린 사람이라면 오늘의 사회 상황과 교회 현실을 보며 아파하지 않을 자 없을 것이다. 이 고통은 그가 목사냐 아니냐에 상관없다. 그것이 바로 그 자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사회 부정의와 한국 교회의 부패를 포함해 이 시대의 모든 것은 “취업이나 여행, 행운과 불행처럼” 동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자서전’에 포함되는 내용이다(90쪽). 특히 저자는 “내가 배운 기독교적 구원의 신학과 조악한 반(反)기독교적 현실의 부조화 속에서 내 한계와 그 한계를 가지고 싸우는 한계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자신의 실존을 ‘호리병 속에 갇힌 괴물’이란 비유를 통해 규정하기도 한다(11쪽). 누구든 자신을 구해주는 이에게 일체의 호의를 베풀겠다는 생각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자신을 구해주는 이가 나타나지 않자, 자신을 구해주는 그놈에게 모든 분풀이를 하리라는 마음으로 바뀌는 호리병 속 괴물의 인식상의 변화, 그리고 이를 통해 찾아오는 구원! 외부에서 오는 힘만을 바라는 무기력과 변질된 호혜적 사고의 틀을 깨는 ‘의식혁명’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현실이라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이들은 대개 이와 같지 않을까?

"그 교회는 지금 무력하고 그 교회의 성도들은 힘이 없다. 무릇 하나님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자들에게는 말씀하시지 않고,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 모든 극복의 과제를 떠맡기시는 것 같다"(7-8쪽). 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저자는 광야의 예언자들을 떠올리며, 그 광야의 사유를 꿈꾸며 쓰고 또 외쳤다. “시대의 혼돈과 현기증에 대한 고뇌"를 안은 독자라면 이 책의 목소리와 공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성실한 부정의 길

그렇다고 이 책이 사회 현실에 비판적 시각을 지닌 이들에게,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거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도에 그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한국 교회 현실을 짚는 책들이 대개 교회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는 일에 집중하는 데 비해, 본서는 교인들의 의식구조와 인식상의 문제를 천착한다. 이 책이 파헤치는바, 회중에게 깊숙이 자리한 욕망과 콤플렉스, 목회자와 신자들의 복음에 대한 무지, 자의적인 텍스트 해석의 문제점, 빈번히 발견되는 심리적 투사와 혼돈의 현실에 대한 지적은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정신적인 화상’을 입힐 만한 것이다. 책은 가히 ‘무지의 현상학’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그려내는 무지몽매한 현실을 하나씩 드러내 검토, 질타한다. 여기에는 신앙의 목적에 대한 몰이해, 기복주의적이고 성공주의적인 긍정일변 신앙의 기만성, 이러한 체질이 공고화, 사회화되면서 초래된 영적 권능의 상실과 같은 것이 대표적일 텐데, 물론 이러한 무지를 방조하거나 조장하는 대형교회, 교계 원로의 발언과 퍼포먼스 등도 칼날을 피해가지 못한다. 당대의 지배세력과 불화했던 예언자들의 전통을 성실히 따라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온갖 형태의 ‘권력’들에 대해서도 날을 세운다.

 

“나는 이 책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라 불리는 가시적이고 현상적인 교회를 비판했다. 그 교회들을 이끌고 있는 목사들에 대한 신뢰를 가능한 만큼 기억에 남을 정도로 부정했다. 그 성도들을 향한 신뢰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실히 부정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그들을 향해 말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이유가 있다. … 단지 우연에 의해 획득된 정신의 고정화된 비늘, 무엇으로도 벗겨지지 않을 인식상의 우둔함과 미련함이 증상의 핵심이다. 나는 그 모세의 수건을 어떻게든 환기시키고 조금이라도 벗겨내고 싶었다. 할 수만 있으면 그들을 대형교회의 예배당과 그들의 집회로부터 끌어내고 싶었다.” _9쪽

 

자기 부인의 신앙을 향하여

이처럼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 현실이 ‘자기 부정’이라는 기독교적 구원의 방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책에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설명하는 것은 욕망의 메커니즘,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이다. ‘속지 마십시오’ ‘깨어나십시오’ ‘떠나십시오’ ‘자라나십시오’. 사력을 다해 던지는 이 광야의 요청과 물음을 통과하지 않고서, 한국 교회는, 우리 신앙의 모습은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전에는 그런 욕망을 제대로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그 사실만이 괴로웠겠지만, 이제는 자신의 실존이 여전히 옛사람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때문에 괴로워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 책임이고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 자기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을 통해서 복음적 치유와 회복,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했던 동물성과 야수성과 잔인함과 비열함과 교활함과 경박함이 이제는 자기에게서 발견되는 겁니다. 그러니 말보다는 침묵을, 표현보다는 사색을, 행동보다는 존재를 선택하게 됩니다. 전에는 ‘Doing’이 최우선적 문제였지만 이제는 ‘Being’이 우선의 문제가 되는 겁니다.”(201-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