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크리스틴 루페니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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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하윤숙 |
브랜드 | 비채 |
발행일 | 2019.10.28 |
정가 | 13,8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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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49-9944-7 03840 |
판형 | 120X186 mm |
면수 | 424 쪽 |
도서상태 | 판매중 |
나쁜 데이트의 기록, 뜨거운 소설이 되다!
<뉴요커> 최다 조회수 450만 건, 미국 HBO 드라마화!
2017년 12월, 뉴욕은 나쁜 데이트를 다룬 단편소설로 온통 떠들썩했다. 이 소설이 실린 <뉴요커> 온라인판은 450만 건이라는 최다 조회수를 기록했고, “바로 내 이야기다!”라며 공감하는 독자들의 목소리로 SNS 또한 끓어올랐다. 한편에서는 ‘지면 낭비’ ‘쓰레기 같은 소설’ 등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크리스틴 루페니언의 소설 <캣퍼슨> 이야기이다. 작가는 한국 독자에게 쓴 특별 서문에서 “세상을 향해, ‘누구 이런 감정 가져본 적 있나요?’ 하고 물었더니 세상이 귀가 먹먹할 만큼 큰 소리로, ‘있어요!’ 하고 대답한 것 같았다”고 밝혔다. 대체 이 소설의 ‘무엇’이 그토록 격한 공감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그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크리스틴 루페니언의 첫 소설집 《캣퍼슨》 한국어판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화제의 소설 <캣퍼슨>을 포함해 <좋은 남자> <겁먹다> <성냥갑 증후군> 등 호러와 서스펜스, 사회소설의 장르를 넘나들며 우리 마음속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단편소설 열두 편이 실려 있다.
책 속에서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차가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그가 자신을 어딘가로 데려가 강간한 뒤 살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그가 말했다. “걱정 마, 당신을 죽이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차 안을 불편하게 느끼는 게 내 탓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데이트를 갈 때면 매번 살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자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하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_24페이지 <캣퍼슨>
그는 대답이 더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지만 제시카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뭔가 말을 하려고, 이를테면 ‘당신은 내게 말을 걸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지 않아요?’라든가 ‘여기가 아이들 노는 곳이라는 걸 몰라요?’ 같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제시카는 자기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히든트랙이 들어 있어요.”
_62페이지 <룩 앳 유어 게임, 걸>
말라는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절대 그렇지 않아, 우리 딸”이라고 말하거나, “미움은 아주 좋은 말은 아니야”라고 말하거나, “아빠 덕분에 네가 생겼으니 엄마는 언제까지나 아빠를 사랑할 거야” 등등의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상황에 필요한 모든 상투적 말들이 그녀의 혀 위에 쪼그라들어 달라붙었다.
_102페이지 <정어리>
애런은 전화를 끊고 양동이에 따뜻한 비눗물을 가득 채웠다. 낡은 티셔츠를 묶어 바깥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벽이 반짝반짝 빛날 때까지 문질러 닦았다. 역겨움도 반감도 들지 않았고 그저 뭐랄까, 무뎌진 경멸감만이 느껴졌다. 그들은 그를 몰아내기로 선택했다. 아이들을 때리는 것을 선택했듯이. 피임하지 않고 성관계를 갖는 것을 선택했듯이. 그들이 선택한 거야. 그가 혼잣말을 했고, 단어들이 입안에 고인 피 같았다.
_134페이지 <한밤에 달리는 사람>
옛날에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공주가 살고 있었다. 이 일이 골칫거리가 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공주는 생기 가득한 눈에 사랑스러운 작은 얼굴을 지녔다. 미소를 잘 짓고 농담도 잘했다.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한 날카로운 정신의 소유자였으며, 당시 기준으로 볼 때(아니, 다른 어느 시대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수준 이상으로 책에 코를 박고 지내는 시간이 길었으니 언제든 들려줄 이야기를 갖고 있을 터였다.
_144페이지 <거울, 양동이, 오래된 넓적다리뼈>
그는 따뜻한 정과 칭찬에 목말라하는, 슬픔에 빠진 작은 개 같았다. 그가 개처럼 술을 홀짝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그의 부드러운 머리를 토닥여주고 귀 뒤쪽을 쓰다듬어주고 그가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_172페이지 <나쁜 아이>
그녀가 그에게 기대 눈을 감았고, 그녀가 잠들었다고 확신한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살갗에서 소금과 연기 맛이 났다. 내 생각이 틀린 것 같아. 테드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있을 거야.
불행히도 그는 그럴 수 없었다.
_211페이지 <좋은 남자>
캐스는 풀장의 소년을 기억해낸다. 풀장의 소년은 너의 발에 입을 맞추고 그것을 감사히 여기는 소년이며, 너 때문에 아파하는 소년이며, 너 때문에 아파할 소년이라고 캐스는 판단한다.
_282페이지 <풀장의 소년>
한 가지 마법을 끝내면 다른 마법으로, 다시 또 다른 마법으로 넘어갔다. 매일 밤 그에게서 눈물을 짜내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다. 나는 고함치고 간청하고 애걸했으며, 때로는 울기도 했다. 나약했던 어느 순간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거 이해 못 해요?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나는 갈수록 창의성을 발휘했고 칼 이외의 것도 사용했다. 그는 고통스러워 울고, 두려워 울고, 외로워 울고, 지치고 혼란스러워서 울었다. 그리고 날 위해 울었다.
_332페이지 <겁먹다>
로라가 부푼 상처 속으로 면봉을 밀어 넣자 그 주위로 뽀글뽀글 피가 솟아 나온다. 그녀가 의기양양하게 면봉을 들어올리며 소리친다. “여기! 보여?” 그는 피가 묻은 면봉 끝에 묻은 아주 작고 희미하고 번들거리는 점을 어쩌면 알아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형체를 알아보려 애쓴다. 벌레인가? 알? 솜털 조각인가?
_348페이지 <성냥갑 증후군>
너무 형편없이 망가져 있어서 꺼지라는 말도 못 하는 남자, 그러면서도 잔뜩 겁먹어 자기가 해주겠다고 말한 대로 해주는 남자.
_391페이지 <좋은 남자>
한창 사람을 물고 다니던 시절은 지나갔음에도 성인이 된 엘리는 여전히 사무실 여기저기에서 동료에게 몰래 다가가 그들을 무는 몽상을 한껏 즐기곤 했다. 예를 들어 복사실에 몰래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_401페이지 <무는 여자>
작가의 한마디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면 내게 이야기해주기를 희망한다.
옮긴이의 한마디
그러나 이런 다양성 속에서도 작가만의 독특한 색채를 느낄 수 있는데, 바로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은 상상력이다. 사실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 점이나 장르 전환 또는 장르 파괴의 특징 역시 그저 단순한 형식 실험이라기보다는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인물의 욕망 혹은 본능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혹은 사회적 제약 속에서 끝내 욕망을 충족하려는 안간힘이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탐구한 상상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상과 달리 흘러가는 전개와 결론 앞에 놀라지만 뜻밖에도 곧바로 수긍하며 우리 자신의 마음 깊이 들어 있었을, 혹은 갇혀 있었을 또 다른 마음을 깨닫는다.
(하윤숙, ‘옮긴이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