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서수집가의 비밀노트
저자 | 장수찬 |
---|---|
브랜드 | 김영사 |
발행일 | 2019.06.24 |
정가 | 14,900원 |
---|---|
ISBN | 978-89-349-9627-9 03910 |
판형 | 152X210 mm |
면수 | 264 쪽 |
도서상태 | 판매중 |
옛 글을 사고, 이야기를 팔다
‘보물탐뎡’의 비밀노트에 담긴 고서 수집의 세계
수집과 경매를 통해 오래된 책과 문서를 구입하고, 거기에 얽힌 사연을 추적하는 ‘보물탐정(寶物探偵)’의 비밀노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많은 옛 물건들이 보물탐뎡의 손을 거치면, 진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값비싼 ‘보물’로 재탄생한다. 한자가 빼곡한 낡은 종이뭉치가 알고 보니 유서 깊은 양반 사대부의 시집(詩集)이고, 단돈 5천 원짜리 종이쪼가리가 150만 원의 가치를 가진 조선시대 과거시험 성적표일 줄이야!
《보물탐뎡: 어느 고서수집가의 비밀노트》는 저자가 직접 수집한 고문서와 서책들의 컬렉션, 그에 얽힌 스무 가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혼란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유유자적 시화를 즐긴 조선 양반들, 친조카를 머슴으로 팔아먹은 어느 삼촌, 친일 부역자의 뻔뻔함이 담긴 부채, 일본인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조선통신사, 구한말 영어공부에 매진해 출세한 학생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군상의 사연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문서의 연대·저자·내용에 대한 단서를 하나하나 발견하고 추적해내는 수사 과정이 극적인 재미를 선사함과 동시에, 조선시대 생활상, 문화, 예술 등에 대한 상식도 풍부하게 전해준다.
책 속에서
우리의 오래된 문서와 책들, 바로 ‘고서(古書)’는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가진 보물 가운데 특히 자랑할 만한 것들입니다. ‘기록 덕후’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 선조들은, 신분이나 지위,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많은 기록들을 글과 책으로 남겼습니다. (p.4)
보물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보물 자체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물건을 알아보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야 보물이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고서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선조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 비로소 보물의 가치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보물들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가는 것이 바로, 이른바 ‘보물탐뎡’의 여정입니다. (p.5)
마음속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야호! 이것은 희귀한 시집이다!’
누가 알았을까요? 이 낡은 시집이 잘나가는 명문 사대부 자제들의 공동 시집이었다는 것을! 가회동과 안국동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며 조선 팔도를 호령한 북촌 경화세족들. 바로 그들의 시집이었던 겁니다. 이젠 눈을 비비고 시문을 읽어볼 차례입니다. (p.22)
설레는 마음으로 낙찰 가격을 써넣고 마감 일자를 기다립니다. 예상대로 입찰자는 제가 유일했습니다. 낙찰 받은 금액은 단돈 5천 원입니다. 고문서의 진정한 가치를 알았으니, 이제 실제 가격을 매길 차례입니다. 문서의 가치는 생산된 연도도 중요하지만 크기와 보관 상태, 그리고 부속물들도 무척 중요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소장한 이 〈전강홀기〉를 보고 구입 의사를 전해온 기관이 있었습니다. 기관이 제시한 가격은 150만 원이었습니다. 제가 구매한 가격이 5천 원이니, 무려 300배 가까운 가격입니다. (p.25)
훌륭한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김광국의 취미는 그림 수집이었습니다. 김광국은 청나라로 사행을 떠났다가 황제의 전속 화가로 불리던 김부귀란 사람의 〈낙타도〉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중국에는 이런 화가가 없었다는 것이 오늘날에 서야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으니, 김광국은 중국 상인의 농간에 넘어가 가짜 그림을 구입한 것이지요. 조선인 화가라는 거짓말에 그림 가격이 급등했을 것이고, 황제의 전속 화가라는 두 번째 거짓말에 거금을 지불한 것이 분명합니다. (p.37)
호적을 살펴보다가 재밌는 사실 하나가 눈에 띕니다. 노비로 부림을 당하던 14살 어린 아이의 이름이 ‘강아지(江阿之)’라는 점입니다. 분명 성격이 순둥순둥하여 강아지라는 이름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밖에도 ‘끝룡(唜龍)’ ‘건리쇠(걸쇠, 件里金)’ 같은 차자식 이름도 눈에 띕니다. 순우리말을 한자로 음차하여 이름으로 삼던 부류들은 순탄치 못한 삶을 살던 조선시대 노비들입니다. (p.70)
재미있는 사실은, 기생들과 학생인 유생과의 사이에서도 ‘썸씽’이 제법 있었다는 것입니다. 1871년 제작된 《관서읍지(關西邑誌)》에서는 향교 유생과 기생 간에 통정(通情)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한성판윤 고득종 후손인 고경준은 없는 살림 탓에 항상 구멍 난 버선을 신고 다닐 정도였지만, 향시에서 늘 장원을 차지하던 수재였습니다. 기생들이 이런 수재를 가만히 놔둘 리 없습니다. 향교를 오가던 고경준을 보기만 하면 인근 기생들이 몰려나와 “구멍 버선 고서방!” 하며 그를 유혹하였다고 합니다. (p.118)
이혼문서에서 주목할 점은 혼인의 관계를 금전으로 청산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오늘날과 동일한 부분이라 더욱 흥미를 끕니다. 200냥이라는 거액의 위자료를 지급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당시 초가 한 채가 보통 30냥 정도 했으니, 초가 여섯 채는 사고도 남는 금액을 부인이 받아간 것이지요. 세를 놓고 산다면 평생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을 금액입니다. (p.151)
대한제국 독수리 우표는 1903년 대한제국의 고문인 끌레망세가 프랑스에서 발행한 것인데요. 우표의 내용을 하나하나 분석해봅시다. 독수리 날개는 보호를 의미합니다. 여덟 개의 태극은 조선 팔도를 상징합니다. 대한제국 전역이 황제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 죠. 독수리의 왼쪽 발톱이 쥐고 있는 것은 검입니다. 이것 역시 황제의 무력을 상징합니다. 오른쪽 발톱이 쥐고 있는 것은 지구본으로 개방을 상징합니다. 또, 가슴에 새겨진 전통문양인 태극 팔괘는 조선왕의 상징이던 팔괘 형식의 어기(御旗)를 모티브로 하여 가져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p.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