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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저자 도진기
브랜드 비채
발행일 2019.02.11
정가 13,800원
ISBN 978-89-349-8464-1 03810
판형 140X210 mm
면수 308 쪽
도서상태 판매중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의 원칙 VS 상식에 반하는 판결

‘소설 쓰는 변호사’로 돌아온 도진기, 진짜 정의의 길을 묻다!

 

20여 년의 판사 생활을 끝내고 변호사가 된 작가 도진기가 처음으로 본격 법정물을 발표했다. 이야기는 현직 부장판사인 ‘나(현민우)’가 일 년 전 재판한 일명 ‘젤리 살인사건’을 반추하며 시작된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연인 사이인 남녀가 모텔에 체크인했다. 몇 시간 후, 여자가 119에 신고해달라며 다급하게 인터폰으로 요청하더니 급기야는 맨발로 프런트에 달려온다. 남자친구가 젤리를 먹다가 목에 걸려 숨을 못 쉰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죽었고, 얼마 후 여자친구에게 거액의 보험금이 지급되었다. 검찰은 계획적인 보험살인으로 보고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 과정을 통해 사건 당시의 증거와 법의학자들의 증언을 청취한 현민우는 여자의 범행을 확신하지만, 배석판사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그것이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을 거친 판결이냐고.

 

 

책 속에서

 

이것도 하나의 결말일까.

어제의 죽음과 이 모든 일의 처음에 ‘그 사건’이 있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젤리 살인사건’.

일 년 전 내가 재판한 사건이었다.

20페이지

 

검찰이 제출한 증거는 진단서, 사망진단서, 구급활동일지, 진료소견서, 간호기록지, 응급임상사본, 은행거래내역, 보험청약서, 보험계약변경서, 입출급내역, 사고현장사진, 통화내역, 통화역발신추적, 모텔객실사진, 감정의뢰회보 등이었다. 꽤 많은 증거가 제출되었음에도 정작 지문이나 DNA, CCTV 같은 직접증거는 전혀 없었다. 흉기도 특정되어 있지 못했다. 다 변죽을 울리는 자료뿐, ‘죽음의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나를 말해주는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35페이지

 

“혹시 그 외에도 비구폐색 살인이면서 흔적이 남지 않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피해자가 만취 상태이든가 해서 반항이 약해진 경우라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도 살해할 수 있습니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다면 코와 입을 막아도 반항이 없으니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있단 거군요.”

“그렇습니다.”

이준호가 주량을 넘게 술을 마셔서 정신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는 게 검찰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검찰은 드디어 만족할 만한 증언을 손에 넣은 것이다.

89페이지

 

“피해자가 반항하기 때문에 상처를 남긴다는 말씀인데요, 만약에 피해자가 술에 완전히 취해 인사불성이라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질식사시킬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96페이지

 

어쨌든 재판은 끝났다. 내 결정을 굳힐 자료도, 의심을 지울 자료도 이 절차 안에서는 더 추가할 기회가 없다. 가끔은 끊어진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완전하지 않은 재료로 완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113페이지

 

 

출판사 리뷰

 

 

법은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며, 판사 역시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다.

그러나 단 한 번, 정의의 편에 서고 싶었다.

 

우리는 법이 늘 옳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법에 과도하게 기대는 것을 경계하며, 법은 궁극의 수단일 뿐, 법과 정의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판결은 어떨까. 그 자체로 정의의 심판이자 약자의 편으로 기능할까? 상식과 동떨어진 판결들을 보고 있으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20여 년 동안 판사로 일했고, 2017년부터 변호사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도진기 작가 역시 이렇게 고백한다. “어째서 저런 판결이 나오는가. 사실은 나도 오랫동안 궁금했다.” 이 같은 궁금증에서 시작된 소설 《합리적 의심》은 도진기 작가가 판사이던 시절에 쓰였지만, 그가 공직을 떠나서야 비로소 세상 빛을 보았다.

 

부장판사인 나(현민우)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젤리 살인사건’을 맡았다. 20대 초반인 남자가 연상의 여자친구와 모텔에 투숙하여 술에 취한 채 큰 젤리를 먹고 기도가 막혀 죽었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사건 당시에는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여자친구인 김유선이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한 데다 다른 남자들과도 교제 중이었던 정황이 밝혀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는다. 나는 김유선의 범행을 확신하지만 배석한 민지욱 판사는 이는 억측일 수도 있다며 나의 주장을 반박한다. 민지욱 판사의 반박 근거인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의 원칙(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을 따른다’는 원칙에 근거,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판사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은 이렇게 소설 속 주인공들의 운명을 쥐락펴락한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챘겠지만, 소설은 실제 사건인 일명 ‘산낙지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2010년 4월, 남녀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모텔에 투숙했고, 여자친구가 산낙지를 먹다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남자친구가 다급하게 신고한 사건이다. 여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고, 남자친구는 거액의 보험금을 받았다. 죽음의 원인, 즉 사고사냐 살인이냐를 두고 피고인과 수사기관, 법원이 날선 공방을 벌였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 끝에 남자친구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소설 속 현민우 판사는 실제 사건 속 판사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 거대한 사법 시스템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온 지난날을 뒤로하고 정의의 편에 서고자 한 것이다. 도진기 작가는 권말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 자체가 아닌 이야기가 전하려는 것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당부한다. 또 이 작품을 추리소설이 아닌 법정물로 읽어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성의 밑바닥을 처절히 드러내는 심리묘사와 이어지는 반전은 장르소설의 매력 또한 유감없이 보여준다.

 

작가의 한마디

재판을 비난하거나 누구를 규탄하거나 현실의 결론을 바꾸려는 의도는 없다. 독자들이 그 사건과 이 작품의 사건을 동일시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소재도 ‘젤리’로 바꾸었고, 당사자들의 성별도 바꾸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허구다. 진실은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가 전하려는 것에 있다.

어쨌든 간에 판사가 아니었다면 쓰지 못했을 책이다. 또, 판사였으면 출간하지 못했을 책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썼던 삼 년 전 난 판사였고, 책이 나온 지금은 아니다. 정확히 그렇게 되었다.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법원을 나온 건 아니지만, 법원을 나와 이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