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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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찬찬히 둘러보시면 아마도 내일 또 오고 싶으실 거에요.

대변동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

저자 김비
일러스트 박조건형
브랜드 김영사
발행일 2020.10.10
정가 13,800원
ISBN 978-89-349-8663-8 03810
판형 130X188 mm
면수 272 쪽
도서상태 판매예정
종이책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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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섬에 사는 엄마를 만났다, 십 년 만에”

다랑쉬오름, 비자림, 월정리 바다, 가파도…

일상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일상을 함께한 사십 일간의 제주 살이

 

돈 쓰면 큰일 날 것처럼 굴고, 앞뒤가 맞지 않는 혼잣말을 노래하듯 흥얼거리는 엄마. 어느덧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한 의지나 자식에 대한 진심은 결코 약해지지 않은 엄마, 복희 씨. 제주 이야기를 담은 책은 많지만, 이 책은 제주에 사는 복희 씨를 통해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하나둘 접하다보면 엄마, 할머니에 대해 지녀온 그리움이나 미안함, 애잔함 등의 감정이 생생하고 풍부하게 되살아난다.

 

소설가인 김비의 글에는 제주의 따스한 햇볕과 시원하고도 서늘한 바람, 으스스한 추위까지 스미어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을 오감으로 느끼는 듯하다. 거기에 수채화로 표현한 박조건형 작가의 제주 풍경이 더해져 여행의 깊이가 더욱 깊어진다.

 

글과 그림으로 담아낸 파란 바다와 탁 트인 오름, 만만치 않지만 훈훈함이 묻어나는 한라산 등반길 등의 풍경은 이들 셋과 함께 제주를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이들 셋의 제주 살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 자신의 제주 여행의 추억, 엄마를 비롯한 가족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인간다움이 듬뿍 느껴지는 표현으로 인해 복잡다단하고 사소하지만은 않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드로잉 에세이이다.

 

 

책 속에서

 

복희 씨가 제주에 없다면 제주 살이는 쉬이 결정할 수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짐을 잔뜩 실은 자동차가 마침내 복희 씨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뭐 이런 걸 다 가지고 왔냐!”는 타박을 들었을 때, 우리 셋의 동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우쳤다.

_25쪽

 

제주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1112번 도로를 지나, 도로를 넓히겠다고 나무를 죄다 잘라버린 사려니숲 옆길을 지나, 중산간도로로 제주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했다. 넘어가든 돌아가든 제주를 가로지르려면 반드시 지나게 되는 한라산. 오늘도 한라산의 완만한 능선은 푸른 하늘 높이 선명하게 보였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중에 한라산을 꼭대기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날이 백 일도 채 되지 않는다는데 우리는 벌써 여러 날째 한라산을 보고 있으니 이게 무슨 행운인지.

_67쪽

 

배에서 내려서니 가파도 터미널 카페가 가파도 표지석보다 더 크게 눈에 띄었다. 돌아보니 산방산과 송악산과 한라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향해 탄성을 질렀다. 자연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선물을 준비한 걸까? 가파도 여행에 대한 보상은 그 풍경 하나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_73~74쪽

 

이토록 가까운 곳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 있다니,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차도를 넓히는 공사장을 지나자 길 옆에 키 큰 나무들 너머로 완만한 다랑쉬오름이 서서히 고개를 내밀었다. 정말 오랜만에 제주에서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쉽게 기대할 수 없던, 두 번째 설렘.

“우와…. 이렇게 가까운 곳을 그동안 왜 못 와봤지?”

한탄 반 자책 반, 아이처럼 좋아하는 나의 혼잣말에 신랑은 무뚝뚝하게 밀양 박씨 스타일로 정확한 대답을 해주었다.

“게을러서요.”

_111쪽

 

“우와, 우리 엄마 장하네! 칠십이 훨씬 넘어 진달래밭대피소까지 왔네! 앞으로 보는 사람들마다 자랑하셔, 내가 이 나이에 내 두 다리로 한라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온 사람이다, 보는 사람마다 자랑하셔!”

“아이고, 너무 좋다! 차암, 좋아!”

주름진 얼굴의 복희 씨는 탄성을 뱉었다. 꽃나무 아래에서 꽃 무더기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_221쪽

 

복희 씨는 돌아가는 길에 배 안에서 라면과 같이 먹으라며 작은 플라스틱 통에 겉절이 한 줌을 담아주었다.

“가을에, 다시 올게요.”

“그러자, 그때는 오름 가자, 오름! 박 서방도 잘 살고…. 아무 걱정 말어! 그냥 즐겁게 살아, 즐겁게!”

복희 씨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고작 이뿐이지만 하지 못한 말이 많다는 걸 안다. 그의 말대로라면 못 배우고 못난 어미라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_258쪽

 
  • 김비 (저자)

글, 김비

 

소설가. 제주에서 엄마와 같이 살고 싶었지만, 엄마를 버리고 도망쳐 나와야 했던 비겁한 둘째.

  • 박조건형 (일러스트)

그림, 박조건형

 

십 년간 현장 노동자로 살다가 짝지 덕에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되었다. 전업으로 일상 드로잉 작가 생활을 삼 년 반 정도 하다가 다시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우울증 경력은 이십구 년 차이다.

 

차례

 

프롤로그 숨어 있는 시간을 들춰보는 일

 

하나. 제주에

신랑은 저공비행 중

너울을 타며 먹는 라면 한 그릇

 

둘. 만남은

호텔도 아니고, 리조트도 아니고, 촌집에 산다는 것

푸르고 푸른 바다 앞에서

숙제하듯 살더라도, 살아요

기다림과 믿음의 시간

“이천오백 원 가격표 국, 잘 먹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옥상 위, 책 한 권, 커피 한 잔, 보일락 말락 바다

 

셋. 오일장으로

자식 새끼가 아니라 물고기 밥을 위하여

“여기 봐라, 신기한 것 많제?”

“파전에 오징어가 차암 많이도 들었다!”

 

넷. 가파도에서

섬에서 섬으로 가는 일

완만한 경사를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면

“손가락을 대지도 않았는데 눌러지냐?”

 

다섯. 복희 씨의 정원에는

제주에 사는 바람, 바람과 사람

당신의 마당 속, 당신의 마음속 꽃구경

복희 씨를 위해, 징그럽도록 천년의 사랑을

 

여섯. 사랑이더라

푸른 바다를 보고 마음이 후련해지지 않더라도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밑도 끝도 없는 웃긴 짓

 

일곱. 다랑쉬오름에서

달이 누운 언덕, 다랑쉬오름

가보지 않은 길은 아주 가까이에

시간의 굼부리를 돌아서 내려가면

 

여덟. 마음들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고 감사를 전하는 방법

어버이날에는 매생이칼국수와 구좌상회를

연결되고, 이어지고, 다시 연결된 마음들

 

아홉. 가시리 마을이라면

퐁낭이 지킨 마을, 가시리 마을

“우리 앞에 열린 길, 걸으면 됩니다”

숨은 그림을 찾듯 길을 찾는 재미

 

열. 돌아오지 않는 산책

돌아오지 않는 산책

‘제주’라는 지옥

“비밀번호를 알려주시겠습니까?”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

손을 잡아도 되고, 잡지 않아도 되고

 

열하나. 그래도 비자림

서로의 허리를 끌어안고 자란 나무 둘

업히지 않아도 괜찮은 등짝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못한 시간 앞에 서는 법

 

열둘. 한동리 마을에서

보호받고 보호하는 존재들

모호하고 흐릿한 그림이 전하는 부탁

 

열셋. 보말의 맛

지금거리는 지금지금

된장국에도, 파전에도 넣었지만

 

열넷. 한라산을 알고 있습니까?

더 늙으면 정말 못 갈 거 같아서

복희 씨는 처음 들어본 말 “정말 장하십니다”

“가보는 데까지 가봐, 가보는 데까지”

“아이고, 진달래 없는 진달래 밭 차암 예쁘다”

불운은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주저앉아버린 모두를 위하여

우리는 모르던 한라산의 불운

 

열다섯. 동광리 그리고 의귀리 마을에서

한 발짝도 걷지 않는 여행

하얀 메밀꽃과 나란히 앉아

어쩌면 걷지 않아도, 멀리 나아가지 않더라도

 

열여섯. 울지 않고 헤어지기

활짝 핀 당아욱꽃 앞에서, 가족사진

제주 바다에, 이제야 발을 담갔다

우리 여행의 이름은

 

에필로그 저공비행 중이지만

출판사 리뷰

 

“함께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혼자 살아갈 수는 없기에”

존중와 예의를 놓지 않는 세 사람의 제주 살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나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 지내기는 쉽지 않다. 잠깐의 여행이 아닌, 한 달이 넘는 ‘살이’라면 더욱 그렇다. 함께해서 기쁘지만 함께라서 피곤해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정말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여과 없이 불쾌한 감정을 툭툭 내뱉기 십상이다. 

 

이 책에서 소설가 김비가 사랑하는 엄마 ‘복희 씨’와 소중한 남편이자 이 책의 그림 작가 ‘박조건형’과 제주에서 함께한 ‘살이’ 역시 그렇다. 서로 다른 개성의 세 사람이 사십 일간 부대껴 함께 생활하고 여행하는 시간이 마냥 좋기만은 어렵다. 불편하고 답답하며 맘에 안 드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놓지 않는다. 불쑥 튀어나오려던 가시 돋친 말을 꾹 삼키고, 상대방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며, 조심스럽게 상대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한다. 천천히 이해해간다.

 

그래서 이 책은 그들 간의 다툼이나 갈등을 관람하기보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예의와 태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단순히 ‘우왕좌왕 여행기’ 정도의 경험만 전하는 것 이상으로, 따스한 뒷맛을 남긴다.

 

새로운 집에 사는 일은, 온전히 건물 한 채만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는 일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평온이란 고요가 아니며, 평범이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린 멀리 떠나와서야 깨우친다.

_24쪽

 

복희 씨가 부끄럽기도 했고, 힘들게 얻은 사위 대접이 이 정도인 것도 미안했다. 가난한 것들이라서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숨이 턱턱 막혔지만, 새카만 바다뿐인 해안도로에 들어서며 머릿속도 새카맣게 지워버렸다. 쓸데없는 감정 낭비가 얼마나 많은 걸 망치는지 안다. 미안하다는 감정을 앞세워 복희 씨에게 하려던 분풀이를 신랑에게 하는 일은 그야말로 제 발등을 찍는 일.

_28쪽

 

이들의 존중과 예의는 제주에서 만난 주변에까지 발휘된다. 지나가던 아저씨와 풀벌레 등등…. 존중하고 조심하며 둘러보는 것, 이들의 여행 방식이다. 유명한 곳에 발 도장을 찍은 뒤 사진을 찍고 돌아오기보단 꽃과 바다와 산을 느끼며 시끄럽지 않게, 고요히 함께 머문다. 그렇기에 여행하는 장소는 어디이든 상관없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서 발견한 하얀 메밀꽃 밭, 제주시민속오일장에서 고소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기름집…. 그렇게 이들은 제주 살이의 진면목을 하나씩 보여준다.

 

말소리나 발소리를 줄일 것, 주민을 만나면 공손히 인사할 것. 남의 집 마당도 아니고 공도에서 그럴 필요까지 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여행의 다른 이름은 ‘침입’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 사람들과 풀벌레들은 일방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웃는 얼굴들의 침입.

우리는 몸을 낮추어 조용히 걸었다. 어차피 신랑은 말이 없는 사람, 나 역시 그에게 말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 모두 이어져 있는 길인 줄 알고 골목을 걷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다시 되돌아 나오고, 강한 바닷바람 때문에 한쪽으로만 휘어져 자라는 나무들을 올려다봤으며, 무심히 핀 꽃들을 향해 조용히 탄성을 질렀다.

_189~190쪽

 

우리는 새하얀 메밀꽃 밭 구석에 돗자리를 폈다. 신랑은 두 다리를 활짝 펴고서 낮잠을 잤다. 나는 퉁퉁 부은 다리를 쿠션 위에 올려놓고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책이라도 읽으려고 태블릿을 챙겨왔지만 전원조차 켜지 않았다. 날아오는 벌레들을 찡긋거리며 얼굴로만 쫓았고 움직이는 그늘을 따라 엉덩이를 옮겨야 했지만 그 모든 것이 나에겐 분명 여행이었다. 여행이 선물이라면 너무도 완벽한 선물이었다.

_239~242쪽

 

어려움이 찾아와도

침잠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

또다시 생을 살아내는 힘에 대하여

 

소소하면서도 아웅다웅한 제주 살이가 될까, 했는데 누가 꾸며두기라도 한 듯 위기가 찾아온다. 소설 같은 ‘박조건형 실종 사건’과 ‘한라산 발목 부상 사건’ 그리고 그 속에서 ‘복희 씨’를 10년 만에 만나게 된 사연까지. 결코 평온하고 고요할 수 없는 이들의 인생 이야기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렇지만 침잠하지 않는다. 김비 작가가 써내려간 아름답고 따스한 문체로 이야기는 너무 무겁거나 우울하지 않게 흘러간다. 오히려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서로를 돕는 모습, 또 그런 모습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책에 빼곡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인생이지만, 그 경험 속에서 받고 또 주는 도움이 있기에 살아내게 되는 것.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제주 살이에서 자연히 생을 떠올리고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해피 엔딩과 새드 엔딩,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맴도는 이야기의 마지막을 읽으며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주저앉은 채로 꽤나 마음이 데워졌다.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불쑥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다니. 주저앉은 내 마음에 꺼진 줄 알았던 작은 불 하나가 켜진 것 같았다.

_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