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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의 철학적 대화

저자 이승종
브랜드 김영사
발행일 2020.08.25
정가 22,000원
ISBN 978-89-349-9105-2 93100
판형 152X225 mm
면수 460 쪽
도서상태 판매예정
종이책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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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고유섭, 서영은, 김형효, 박이문... 철학의 길에서 만난 우리 철학자?예술가들

엄밀한 텍스트 읽기와 심도 깊은 토론으로 그려낸 한국현대철학의 지형도, 우리 사유의 세계

 

분야를 가로지르며 대화의 철학을 모색해온 연세대학교 이승종 교수가 오랜 세월을 준비해 펴내는 연구서. 이번에 그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우리 사유의 세계를 개척한 한국인 철학자와 미학자, 예술가 들이다. 일제강점기의 미학자인 고유섭, 소설가 서영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융합을 시동한 대표적 철학자 김형효, 방대한 저작을 통해 너른 사유 세계를 선보인 박이문 등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들 외에도 김상환, 승계호, 이기상, 이진경, 박영식, 최진덕 등 40년 철학 공부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두루 호명된다. 여기에 리처드 로티처럼 한국현대철학의 지형도를 그려내는 데 도움이 되는 주요한 해외의 철학자들도 거론하면서, 이 교수에게 영향을 끼친 이들이 남긴 글에 대한 철학적 분석과 비평을 선보인다. 한국철학 공동체 내에서 대화와 상호작용의 부재가 철학적 문제들의 공유를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우리 철학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이어나가려는 창의적 시도가 담겨 있다.

 

 

책 속에서

 

언어가 근본적인 동일성을 기초로 성립되었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드러난 세계의 다양성과 경험의 유동적인 섞임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개념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개념의 영역에서 나름의 위계와 작동으로 산출된 것들이 철학적 체계들이다. 동일자 철학은 우리에게 드러난 (다양하고 개별적인 사건과 사물이 유기적으로 복합되어 있는) 세계를 그와는 질적으로 다른 (단일한 기능으로 추상되고 확장된) 개념 체계로 환원하여 설명하려 한다. _43

 

언어의 사용은 도구의 사용이 그러한 것처럼 인간의 실천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이 인간의 삶을 형성한다. 언어의 쓰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려는 비트겐슈타인의 기술 작업, 언어의 일의적 쓰임이 탐구의 결과가 아니라 전통 철학의 요구 조건이었음을 밝히는 데리다의 해체 작업은 전통 철학과 같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전통 철학은 이성적 이론이 실천에 선행한다는 이상에 사로잡혀 실천의 영역을 왜곡해왔다. 전통 철학에 대한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의 비판은 실천이 이론의 전제임을 보여준다. 새로운 언어관, 즉 삶으로서의 언어는 이러한 실천의 철학을 위해 마련된 디딤돌이다. _48

 

철학은 공시적으로는 사태를 파악하는 학문이고 통시적으로는 흐름을 파악하는 학문입니다. 흐름을 보고 그 흐름을 잡아내는 것이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철학의 본령입니다. 그런데 진보의 이념을 전제로 새것만을 좇다 보면 흐름을 놓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현대 학문을 할 때 경계해야 할 모더니티의 그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이데거는 진리의 그리스 어원이 알레테이아aletheia’임에 주목합니다. 망각을 의미하는 ‘lethe’에 부정어 ‘a’가 붙어 있는 ‘aletheia’의 축자적 의미는 탈망각입니다. 진리는 망각된 역사의 흐름을 회복하고 그 흐름에 대한 기억을 호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의 본령이고 철학의 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에 대한 반성과 역사성의 회복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과제입니다. _90-91

 

비판적 사고와 논술이 중요하기는 합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그 중요성에 일찍이 눈을 떠서 이에 대한 교육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국은 다인종사회입니다. 너무나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서로의 이질적인 배경을 이해할 기회도 많지 않고요. 그래서 아예 서로의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무지無知의 베일) 오로지 서로의 말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풀어가려는 프로그램을 강구하게 됩니다. 논리적 관점에서 말의 타당성 여부에 합리성의 척도가 자리매김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논리와 비판적 사고는 다른 한편으로 말과 사고가 어떠한 궤적에서 제기된 것인지에 대한 통시적 고찰을 거세하고 말해진 바, 생각한 바의 공시성만을 강조하는 폐단을 안고 있습니다. 시간성에서 보아야 할 말과 사고를 공간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공시성의 차원에서도 말과 사고가 놓여 있는 위상, 즉 문맥이 말과 사고의 논리에 배경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_94-95

 

저는 철학이 다른 학문에게 줄 수 있는 비장의 정보는 없다고 봅니다. 철학자들이 이를 빨리 고백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시대의 철학자들에게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처음 제가 철학과에 들어와서 받은 충격이 생각납니다. 제가 철학에서 기대한 것은 세상을 바로 보는 눈과 이를 실천하는 수행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교육과정에서 관법觀法과 같은 수행법은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배운 것은 대체로 근대 이후 학문의 분과화 세례를 거친 고도로 전문화된 철학들이었습니다. _98

 

그러나 로티는 구원적 진리에 기초한 세계관은 쇠퇴하고 있으며, 그 자리를 문학 문화가 차지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문학 문화의 도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탐구란 문제 해결의 과정이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보편적인 해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참신한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반성의 과정은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원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이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여정뿐이다. 따라서 문학 문화에서는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상상력유용성이 중요하다. _107

 

해체론에 관한 메타 철학적 논의들이 종종 공허하고 안이해 보이는 이유는 그 논의들에 텍스트라는 현장이, 그리고 텍스트 해체라는 작업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들은 해체론을 미리 짜인 방법적 프로그램이나 전략으로 보고, 정작 텍스트의 해체는 이 방법적 프로그램이나 전략을 연역적으로 적용하는, 그래서 어느 텍스트에 대해서나 반복이 가능한 작업 정도로 간주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해체론은 개별적 텍스트에 대한 구체적 해체 작업에서 출발하여 이들 각각으로부터 철학에 관한 소위 메타적 논의를 간접적으로 수렴해내는 일종의 귀납적 과정이다. _116

 

철학사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철학사, 사유와 언어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사유와 언어가 불가능한 것이기에 울타리 바깥으로의 외출도 성립할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울타리가 잘못 그려져 있거나 혹은 궁극적인 울타리가 없을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잘못 그려진 울타리는 해체를 통해 탈구성되어야 할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울타리 바깥으로의 외출은 결국 성립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인 울타리가 없는 경우에는 잠정적 울타리 바깥으로의 외출은 사소한 문제가 되고 만다.. _124

 

생명은 윤리에 앞선다. 동양의 예술이 지향하는 전체적인 이법도 생명의 하위 명제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인생을 위한 예술로서의 동양의 예술은 궁극적으로 생명을 위한 예술이다. 유희와 생명은 예술을 전체적 이법에 연계시키는 동양 예술의 전통이 빠지기 쉬운 경직된 감계주의에 대한 예방제요 해독제이다. _141

 

장자가 말하는 무위는 인위에 반하는 개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도는 저절로 깨우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우리가 도를 깨우쳤다 해도 우리 앞에는 여전히 살아야 할 삶이 있습니다. 그 삶을 어떻게 (올바로) 살아가느냐 하는 실천과 수행의 문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선험주의적 장자 해석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_260

 

제가 미처 짚어내지 못한 부분을 대화 상대자가 짚어주거나 대화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되곤 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달리 조건 지어진 유한자이기 때문에 각자에게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대화 상대자의 눈을 통해 세상과 텍스트를 달리 보게 되는 대리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이해의 경계를 깨뜨려 변화의 계기를 얻게 되곤 합니다. 이에 비해 대화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는 2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화를 제 말로만 매듭짓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일치에 이르지 못해도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성과는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_388

 

나의 경우에는 두 번째 경이, 즉 유한성에 대한 경이감이 다른 두 경이감을 압도하였다. 살아 있음과 인식의 경우와는 달리 유한성은 다른 둘과 상호 양립할 수 없는 모순으로 여겨졌다. 세상에서 내가 살아 있음과 그에 대한 나의 자각보다 확실한 것은 없어 보였다. 내가 체험하는 매 순간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확실성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모순을 넘어 충격, 아니 공포로 다가왔다. 무엇이 어떻게 해서 나의 확실성을 무너뜨리는 건지, 그 가공할 위력을 지닌, 유한성 너머의 무한성은 무엇인지가 알 수 없었다. _433

 

그러나 철학의 문제에 관한 한 저런 식의 현상학적 처방이 성에 차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사실을 더 깊게 알고자 하는 철학의 의지가 좌절된다는 데 불만이 있다. 사실의 표면을 꿰뚫어 그 이면을 파고드는 학문이 철학 아닌가. 나는 철학의 을 기존의 밝을 철보다 뚫을 철로 새긴다. 그래서 나는 철학哲學보다는 철학徹學을 지향한다. 유한성이라는 사실의 표면을 꿰뚫는 것이 문제에 대한 나의 두 번째 해법이다. 꿰뚫음은 초월로, 그 작업을 수행하는 철학은 형이상학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초월이나 형이상학이라는 용어는 꿰뚫는 과정이 수반하는 마찰과 진통을 온전히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_437

  • 이승종 (저자)

이승종

 

연세대 철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뉴욕 주립대(버팔로)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 다. 캘리포니아 어바인대 철학과 풀브라이트 방문 교수와 카니시우스대 철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있으며, 같은 대학의 언더우드 국제대 비교문학과 문화 트랙에서도 강의하 고 있다.

 

저서로 비트겐슈타인이 살아 있다면: 논리철학적 탐구(문학과지성사, 2002,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크로스오버 하이데거: 분석적 해석학을 향하여(생각의나무, 2010, 연세학술상 수상작), 동아시아 사유로부터: 시공을 관통하는 철학자들의 대화(동녘, 2018), 뉴턴 가버Newton Garver 교수와 같이 쓴 Derrida and Wittgenstein(Temple University Press, 1994)과 이를 우리말로 옮긴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민음사, 1998, 수정증보판 동연, 2010)이 있으며, 연구번역서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아카넷, 2016)가 있다. 페리 논문상, 우수업적 교수상, 우수강의 교수상, 공헌 교수상, 우수연구실적 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차례

 

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1부 현대철학의 지형도

 

1장 동일자의 생애: 서양 철학사의 지형도

1. 철학사의 시대 | 2. 태초의 언어 | 3. 동일자의 탄생 | 4. 인식하는 동일자 | 5. 말하는 동일자 | 6. 해체되는 동일자 | 7. 구조의 탈중심화 | 8. 삶으로서의 언어

 

1.1 과학사상연구회에서의 토론

1.2 한국외국어대에서의 토론

1.3 연세대에서의 토론

 

2장 한국현대철학의 지형도

1. 사회과학 방법논쟁 | 2. 오해와 이해 | 3. 타인에게 말 걸기

2.1 논평 (한정선)

2.2 한국철학회에서의 토론

 

3장 철학과 사회

1. 분석철학 | 2. 한국철학 | 3. 철학의 역할 | 4. 융합연구 | 5. 역사철학

 

4장 철학사의 울타리와 그 너머: 로티와 김상환 교수

1. 태초에 주석이 있었다 | 2. 로티의 이야기 속으로 | 3. 데리다와 김상환 교수 | 4. 후기 | 5. 부록: 형이상학 밖으로의 외출

 

2부 고유섭과 서영은

 

5장 고유섭의 미술철학

1. 윈도우 | 2. 동과 서 | 3. 윤리와 유희 | 4. 생명으로서의 예술 | 5. 연세 애니미즘 | 6. 모순으로서의 삶 | 7. 접화군생 | 8. 반도의 그늘

5.1 연세철학연구회에서의 토론

5.2 싱가포르에서의 토론

 

6장 우리는 누구인가: 서영은 문학의 철학적 독해

1. 타자 | 2. 바다 | 3. 사막

6.1 요약 (서영은)

6.2 삶의 번제 (서영은)

6.3 논평 (이남호)

6.4 사막을 건너는 다른 법? (김혜숙)

6.5 True Colors

6.6 한국철학회에서의 토론

6.7 , , 그리고 철학 (강신주)

 

3부 김형효와 박이문

 

7장 김형효의 노장 읽기

1. 비대칭성 | 2. 중범위성 | 3. 적합성

7.1 도구적 세상보기와 초탈적 세상보기 (김형효)

7.2 답론

7.3 토론

7.4 노장의 사유 문법과 철학적 분석 (김영건)

7.5 답론

7.6 노장철학과 해체론 (박원재)

7.7 후기

7.8 토론

 

8장 박이문의 철학세계

1. 명징성 | 2. 일관성 | 3. 합리성 | 4. 지성 | 5. 감성 | 6. 후기

8.1 논평 (최신한)

8.2 답론

 

4부 토론과 대화

 

9장 토론과 스케치

1. 승계호 교수의 주제학 | 2. 이기상 교수의 번역의 연금술 | 3. 이진경 교수의 유물론 | 4. 박영식 교수의 삶과 철학 | 5. 최진덕 교수의 철학 | 6. 한국에서 철학하기 | 7. 문학에서 찾은 철학의 길

 

10장 대화

1. 한겨레와의 대화 | 2. 여은희 작가와의 대화 | 3. 학생들과의 대화

 

맺음말: 유한성을 넘어

 

발문 (고영진)

참고문헌

인명색인

주제색인

출판사 리뷰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한 성찰을 감행하는 근원적 사유의 전형

우리 철학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이어나가려는 창의적 시도

 

연세대학교 철학과의 이승종 교수는 지난 세월 끊임없이 대화의 철학을 모색해왔다. 비트겐슈타인의 주저인 《철학적 탐구》를 역주하는 등 비트겐슈타인을 비롯한 영미의 분석철학에 관한 연구 성과를 쌓아오는 한편, 그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천착해 《크로스오버 하이데거: 분석적 해석학을 위하여》라는 굵직한 연구서를 펴내기도 했고, 이태 전에는 “동서양의 철학적 전통을 섭렵하면서 데리다, 장자, 비트겐슈타인, 율곡, 다산, 주희, 용수, 러셀, 들뢰즈와의 생산적 사유를 시도”하여 《동아시아 사유로부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오랜 세월을 준비해 펴내는 신작 《우리와의 철학적 대화》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계속된다. 이번에 그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제목에 나타나 있듯 우리 사유의 세계를 개척한 한국인 철학자와 미학자, 예술가 들이다. 일제강점기의 미학자인 고유섭, 소설가 서영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융합을 시동한 대표적 철학자 김형효, 방대한 저작을 통해 너른 사유 세계를 선보인 박이문 등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들 외에도 김상환, 승계호, 이기상, 이진경, 박영식, 최진덕 등 40년 철학 공부의 길에서 저자가 만난 사람들이 두루 호명된다. 여기에 리처드 로티처럼 한국현대철학의 지형도를 그려내는 데 도움이 되는 주요한 해외의 철학자들도 거론하면서, 이 교수에게 영향을 끼친 이들이 남긴 글에 대한 철학적 분석과 비평을 선보인다.

 

대화의 철학:

철학의 길에서 만난 우리 철학자?예술가들

 

“한국의 철학자들은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취업, 재임용, 승진을 위한 연구업적을 채우기에 바쁜 실정이다. 설령 한국철학계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이 나온다 해도 그것에 관심을 가져줄 여유가 없다. 정대현 교수의 《한국현대철학》에 대한 한국철학계의 침묵이 그 좋은 예이다. 우리 철학계의 이러한 분과 상태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목적에서 《우리와의 철학적 대화》를 구상하게 되었다”(11쪽).

 

그러면 이러한 대화의 목적은 무엇인가? “절실히 요청되는 우리 학문에 대한 정당한 평가 작업”을 수행하려는 것이 그 의도다. 그 과정에서 “선배의 학문에 대한 평가를 넘어 나름의 철학적 비전을 제시하려”는 데까지 이르는 것을 의도한다(17-18쪽). “우리는 한국현대철학의 소개가 아니라 한국의 학자들과 철학을 하려 한다. 대화는 그 철학함의 방법을 아주 일반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사실은 비판, 부연, 비교, 분석 등의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현존하는 한국의 학자들을 망라하기보다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학자들을 선택과 집중의 원칙하에 선별해, 그들과 직접 학술적으로 교류하는 밀착연구의 형태를 띤다”(11쪽).

일제 때 요절한 고유섭을 제외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이 시대의 인물들로서, 저자가 직접 만나 교유한 인물들이다. “이 책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학자 및 예술가와는 책의 집필 과정 중에 그 내용에 대해 직접 만나 대화하고 비판적 조언받았다. 그중 생산적인 대화와 비판은 본문에 직접 반영해 명실공히 대화 해석학의 결실이 되도록 하였다”(17쪽). 한국철학 공동체 내에서 대화와 상호작용의 부재가 철학적 문제들의 공유를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우리 철학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이어나가려는 창의적 시도가 담긴 책으로, 상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분석철학자다운 예리함으로 논변을 분석, 맹점과 모순, 한계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 같은 가차없는 비판은 엄밀하고 철저한 검토라는 철학의 본령을 보여주며, 읽는 이에게 이따금 속시원한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각 장 말미에는 각 편의 글을 발표한 뒤 이루어진 논평과 답론 등을 수록하여,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대화의 철학’을 구현하려 했다. 필자 혹은 발제자들의 동의를 일일이 구하는 수고가 뒤따르는 일이었다. 덕분에 독자들은 철학 분야의 학술토론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엿볼 수 있다. 가령 7장(김형효의 노장 읽기)의 글에 관해서는 당시 꽤 화제가 되며 여러 차례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는데, 저자의 비판적 분석에 대한 김형효 교수의 답론, 다른 학자의 논평과 토론, 재반론 등 8편의 글이 실려 있다. 소설가 서영은의 작품에 대한 철학적 독해를 선보인 6장의 글에 대해서는 소설가 서영은 자신의 답론과 물음이 수록되어 있으며,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꽤 긴 논평도 실려 있다.

 

엄밀한 텍스트 읽기와 심도 깊은 토론으로

그려낸 한국현대철학의 지형도, 우리 사유의 세계

 

‘들어가는 말’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의 얼개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부에서는 한국 현대철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현대철학의 면모를 조망하는 글들을 통해 현대철학의 지형도를 그려본다. 1장(동일자의 생애)에서는 전통 철학에서 현대철학으로의 이행을 동일자에서 타자로의 주제 변환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2장(한국현대철학의 지형도)에서는 서양현대철학이 한국에 수용되면서 형성된 한국현대철학의 지형도를 대륙철학과 영미철학 사이의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그려본다. 3장(철학과 사회)에서는 분석철학이 한국에 수용되는 과정과 현황, 한국철학의 정체성 문제, 학제 간 연구와 융합연구, 역사철학 등의 주제를 대화로 풀어내고, 4장(철학사의 울타리와 그 너머: 로티와 김상환 교수)에서는 대표적 탈현대 사상가로 국외에서는 로티를, 국내에서는 김상환 교수를 택하여 이들의 탈현대적 철학사론이 지니는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5장(고유섭의 미술철학)은 고유섭의 저술들에 대한 독해를 통해 우리 예술사의 철학을 살펴보며 이 과정에서 우리 학계가 전통으로부터 전수받은 문화소文化素들의 함축과 한계를 가늠해보는 마당이다. 서영은의 소설들을 니체의 철학과 견주어가며 허무주의의 극복이라는 이 시대의 과제에 대한 하나의 시도로 읽어내는 6장(우리는 누구인가: 서영은 문학의 철학적 독해)은 서구의 시대정신이 우리 문학에 미친 영향과 그에 대한 우리의 응답을 짚어보는 장이기도 하다.

3부에서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한국철학자로 김형효와 박이문을 집중 조명한다. 박이문과 김형효가 세상을 떠난 지금, 뒤늦게나마 이 두 거장의 철학을 평가하는 자리이다. 7장(김형효의 노장 읽기)에서는 노장에 대한 김형효의 해체적 독법의 의의와 문제점을 몇 가지 범주로 대별해 구체적이고도 비판적으로 거론하며, 8장(박이문의 철학세계)에서는 박이문의 국문 저술뿐 아니라 영문 저술들을 섭렵하여 그가 전개하는 논지의 결함과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보완한다.

9장(토론과 스케치)에서는 승계호, 이기상, 이진경, 박영식, 최진덕 등 국내외에서 활동해온 대표적 한국현대철학자들의 저술들을 비판적으로 거론하여 이들이 기여한 한국현대철학의 현황을 조망하고 이들 분야들에 대한 국내외 연구의 현황을 점검한다. 10장(대화)은 저자의 인터뷰와 학생들과의 대화가 담긴 장인데, 시대가 철학에 부과하는 사명, 철학의 본령이 기술문명 시대에 굴절을 겪게 되는 과정, 미래의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한국 사회의 당면 문제들과 결부해 하나하나 살펴나간다.

대중교양서이기보다는 연구서라 할 책이지만, 철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이들도 음미할 만한 문학적 에세이(9장 7절, 맺음말)와 대화(특히 10장)를 통해 저자의 실존적 문제의식, 오늘의 철학이 당면한 난관과 과제, 대학교육 일반이 처한 현실 등에 대한 고민에 동참할 수 있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아울러 영미 철학, 유럽철학, 중국철학에 대한 종속성에서 벗어난 한국 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한편, ‘수행’과 ‘지행합일’의 철학을 추구하는 저자의 꾸준한 노력도 책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추천사

 

이 책은 지난 30여 년간 분석철학, 해석학, 동양철학과 한국철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왕성한 철학적 반성을 몸소 예증하여왔던 대한민국의 대표 철학자 이승종 교수가 현대 한국의 철학적 지성과 나누는 새로운 대화의 지평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1인칭적 관점과 3인칭적 관점, 이론철학과 실천철학, 그리고 전문가와 일반인의 대당對當을 초극하고 지양하는 이 저서는 많은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서세동점, 서구(특히 미국) 편향이 상식이 되어버리고 또 그런 형세를 이용하여 기득권을 얻고 유지하려는 온갖 거짓 철학자들로 가득한 이 땅에서 과연 스스로 자신의 힘과 고유한 언어로 철학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묻는 모든 생각하는 지성에게 일말의 의심과 주저함 없이 이 책을 추천한다.

_김한라 (서강대 철학과 교수, 미국 네브라스카대(오마하) 유대교 연구소 연구교수)

 

이승종 교수는 철학이 할 일을 묻는 데서 시작한다. 그것은 단순히 때마다의 임무를 찾아보는 게 아니라 철학의 본령을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히 재성찰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그 점에서 이 교수의 태도는 근본주의와 대립되는 의미에서의 근본적 사유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근본적 사유로부터 세 가지 철학의 존재 양식이 탐구된다. 언어의 공공성과 실천성이 그 하나라면, 고유한 구조로서의 한국철학이 그 둘 이며, 실존적 대화로서의 철학이 그 셋이다. 독자 또한 저마다의 언어로 이 책의 대화에 동참하게 되리라.

_정과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이 책에서 이승종 교수는 헤세와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배운 바대로, 순수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평소 지론대로 철학을 하는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그의 철학함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철학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라게 될 것이다. 그의 안내로 열린 마음, 열린 태도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 책을 덮을 때쯤엔 그들이 걸은 길이 바로 철학의 길임을 알게 될 것이다.

_고영진 (일본 도시샤대 글로벌지역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