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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노래한 불멸의 명작

삶을 위한 죽음의 미학

저자 이창복
브랜드 김영사
발행일 2019.06.01
정가 33,000원
ISBN 978-89-349-9566-1 13850
판형 149X219 mm
면수 744 쪽
도서상태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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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삶을 살 것인가, 살아 있는 죽음을 맞을 것인가!”

독문학사 최초 죽음 본격 연구, 인생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한 대작

죽어라, 그리고 태어나라! 불가사의하지만 매혹적인 죽음을 노래한 불멸의 명작을 찾아서. 독일문학의 석학 이창복 교수의 독일문학 산책 ‘삶을 위한 노래, 죽음’ 편.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레싱, 괴테, 노발리스, 릴케, 토마스 만, 뮐러까지. 인간에 관한 심오한 통찰이 빛나는 독일 대문호들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인생 찬가. 고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계몽주의, 고전주의를 거쳐 낭만주의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통해 삶과 죽음의 관계를 고찰한다. 철학ㆍ역사ㆍ종교ㆍ심리ㆍ예술을 넘나드는 통합적 연구와 심미적 해석이 빛나는 독문학사 최초 본격 죽음의 탐구. 인생을 관통하는 문학작품을 통해 인간의 죽음과 존재의 의미를 사색하고 통찰한 역작.

 

책 속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죽음과 만난다. “모든 인간에겐 태어난 순간에 하나의 화살이 쏘아진다. 그 화살은 날고 또 날아서 죽음의 순간에 그에게 이른다”고 말한 장 파울(Jean Paul, 1763~1825)의 말이 진지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죽음을 보지만 간접적일 뿐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슬픔과 고통, 죽음의 침상에서 느끼는 공포와 전율이다. 그래서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죽음을 외면한 채 터부시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과는 무관하게 삶에 부재한 것처럼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해버린다. 그러나 죽음은 항상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죽음이 우리의 삶을 끝내는 것이라면, 그 이후에 오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의식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내세와 영혼의 불멸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죽음은 예부터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이었다. _p.17
 
이 책은 문학적으로 형성된 죽음이 삶에 어떤 의미로 작용했느냐를 고대와 중세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철학이나 신학이 추구하는 소위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ㆍ개념적 질문보다는 비록 허구일지라도 문학 작품에서 표현된 죽음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서 사유할 수 있는, 사실적인 상징성을 지닌 구체적ㆍ심미적 질문에 대한 연구를 목표로 삼고 있다. 문학의 한계를 넘어서 철학, 종교, 심리학, 예술 등에서의 죽음에 대한 관찰은 오직 한 시대의 사조를 더 잘 파악해서 이미 문학작품에서 얻어진 것을 더 강화하고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런 전제 아래서 문학 외의 다른 학문적 시각에서의 죽음에 대한 관찰을 개괄적이나마 별도의 장에서 간략히 서술하였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죽음과 연관된 연구 분야가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소수의 작가들과 작품들만을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연구가 우리나라의 독문학에서 적어도 최초로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분야의 학문에서도 유사한 시도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면에서 의미가 크다. _pp.20~21
 
중세 전성기와 후기를 나란히 놓는다면, 죽음의 생각에서 큰 변화를 볼 수 있다. 그리스도에 의한 죽음의 극복에 대한 상징은 전 중세 시대에 남아 있다. 그러나 중세 후기의 죽음에 대한 생각의 변화란 중세 전성기처럼 죽음이 종교적ㆍ전체적으로 체험되지 않고, 현실적ㆍ개인적으로 체험된다는 데에 있다. 신과 세계는 더 이상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죽음은 오직 더 심한 세상살이에 대한 벌로서 나타날 뿐이다. 그래서 두려움은 더 깊어지고, 죄의 대가로서 죽음에 대한 교의는 잔인하게 사람들을 속박한다. 죽음의 극복은 오직 개인에게 주어지고, 개인은 삶과 죽음 사이의 대결에 홀로 임할 수밖에 없다. 죽음의 문제가 점점 더 인간의 인식범위로 넘어오면서, 젊은 아내를 일찍 데려간 죽음에 항의하는 보헤미아의 농부처럼, 인간에겐 죽음에 대항해서 싸울 가능성이 주어졌다. 비록 그 시대의 사람들이 이미 싹트기 시작한 그 가능성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실천할 수 없었다 해도, 그 가능성은 자의식과 고대예술에서 인간의 존엄과 위대함을 찾으려는 새로운 세대인 르네상스에서, 삶과 죽음의 대결의 새로운 형태로 계속 발전할 수 있었다. 이것이 전체 중세 문학의 토포스인 ‘죽음을 기억하라’가 주는 정신사적 의미이다. _pp.147~148
 
사람은 어느 시대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 앞에서 전율을 느끼고 세상과의 이별을 슬퍼한다. 죽음의 공포와 불가피성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깊은 울림으로 모든 시대를 사로잡고,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이 같은 현상은 시대에 따라 상이한 특징을 나타낸다. 중세를 지배했던 ‘죽음을 기억하라’의 감정은 죽음에 대한 비탄이나 세상에 대한 분노를 심화시켰으나, 다른 한편으로 그 감정은 인생과 삶의 아름다움에 속해 있는 것들을 자극하고 일깨운다. 사람들은 인도주의가 싹터가는 새 시대에 인생을 즐기고 인간의 아름다움과 신성을 추구하는 중요한 변화를 본다. 이제 ‘죽음을 기억하라’는 죽음의 감정은 이전 세기들에서처럼 더 이상 지배적으로 앞으로 밀치고 나가지 못하고, ‘삶을 기억하라(Memento vivere)’는 새로운 감정으로 발전한다. 비록 이 새로운 감정이 여전히 기독교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인간 자체가 사물의 척도가 되는 새로운 인도주의의 감정이 성공적으로 대두하고, 불가피하게 죽음에 대한 생각도 새롭게 나타난다. _p.197
 
인간에게 죽음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은 실제로 자기 자신의 죽음을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함께 살아 갈 때 비로소 인간의 삶은 성숙해지고, 죽음은 인생의 결실로 나타난다. 파스칼이 생각했듯이, 완성으로 나타난다. 이런 생각은 바로크시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바로크시대에 와서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는 생존 시에 문학적 죽음의 변용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인간 모두는 죽음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가 죽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죽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결코 사는 것을 배울 수 없다. 따라서 죽음은 창조적인 변화이고 무상한 파괴가 아니라는 의식에서 삶의 성숙과 죽음의 성숙이 일치한다. 이것이 바로크의 가장 깊고 은밀한 영혼의 기초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죽음 앞에서 도망갈 필요가 없다. 우리가 현세적인 것을 올바로 인식하게 된다면,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_p.239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죽음에 대한 시선은 인생을 심화시키고 성숙하게 만든다. 내세에 대한 질문 역시 고전주의시대에서도 인생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고전주의시대에 추구된 합리주의는 역사철학적ㆍ현실적 숙고에 기초한 도덕적 완성을 추구하는 데에 기초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넘어선 완성의 가능성을 종교에서보다 인격형성의 목적을 향한 노력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에서 찾는다. _p.315
 
깨어 있는 자는 사물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는 자이다. 그 깨달음은 죽음을 내 안에서 싹터오는 존재로서, 영혼의 열매로서 마음속 깊이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최고의 목적으로서 자신의 성숙한 죽음을 만들려는 의지는 삶을 성숙과 완성으로 만든다는 깨달음이다. 릴케는 이 깨달음에 이른 자만이 죽음의 참된 진리를 찾는 꿈에 도취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도취 속에서 죽음은 “나의 종말에 있는 존재(Am-Ende-Sein des Ich)”이고, 경계가 없는 무한한 우주를 위해 열린 존재이며, 전체에서의 개체 해체이다. 이 죽음은 ‘불멸(Unsterblichkeit)’의 상징적 의미로 형성되었다. 무상한 이곳에서 존재의 가치를 찾고 은밀한 죽음의 긍정에서 인생을 찬미하기 위해서 인간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릴케의 문학은 삶을 찬미하는 죽음의 노래인 것이다. _p.520
 
죽음에 대한 지식은 다시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서 그 삶을 비유적으로 만들고, 그것이 감정을 확대시킨다. 때문에 우리 삶의 조건으로 부여된 언제나 깨어 있는 죽음에 대한 의식은 자아상승과 자아실현을 만든다. 죽음의 경험은 삶의 경험이라는 것, 결국 그것은 인간애로 승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애는 죽음과의 영적교감을 통해서 심화되고 확대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애는 초기의 대립적 인생관을 극복하여 대립에 지배당하지 않고 역으로 대립을 지배하며 합을 이루는 기본적인 힘이다. _p.614
 
  • 이창복 (저자)

국내 독문학계의 토대를 닦은 원로 독문학자이면서, 다방면의 문화예술 영역을 아우르며 융합 미학의 영역을 개척한 예술문화사가, 평론가, 미학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 대학교 서양어대학 학장과 부총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독일 쾰른 대학교와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연구 교수 및 교환 교수를 지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교수이다.

대표 저서로 《독일 산문과 시》《독일 문학의 소재와 모티브》《하이너 뮐러 문학의 이해》《독일어 회화》 등이 있고, 역서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하이너 뮐러 문학 선집》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괴테 파우스트의 서론적 3장면 연구〉〈프리드리히 실러의 서정시에 나타난 대립적 구조〉〈레셍의 함부르크 희곡론 연구〉〈프란츠 카프카의 ‘법 앞에서’에 대한 해설 시도〉〈독일 계몽주의 문학〉〈젊은 베르테르의 자살. 그 행위에 대한 비판〉 외 다수가 있다.

 목차

 

이 책을 쓰면서_ 삶 은 죽음을 위한 연습이다

프롤로그_ 문학이 노래하는 삶을 위한 죽음의 찬가

 

1장 인류 문화 속의 다양한 죽음의 모습

: 산다는 것은 곧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

인류는 죽음을 어떻게 형성했는가

성서에서 본 죽음과 죽음 이후

철학과 심리학에서 죽음의 이해

아름다운 죽음, 추한 죽음

다양한 죽음의 얼굴

 

2장 고대 게르만시대의 영웅서사문학에서 나타난 죽음

: 오늘 죽는다 해도 영웅의 명예는 남아 있다.

죽음에 승리하는 격조 높은 노래

 

3장 중세를 지배한 숭고한 메시지, 메멘토 모리

: 인간은 죽음의 종이다. 세상을 지나 영원과 신으로 가는 자신의 길을 인식하라.

메멘토 모리의 기초를 이루는 기독교적 죽음 생각

신과의 합일을 위한 몰아적 신비주의와 교화적 정관주의

죽음 생각의 세속화

 

4장 르네상스시대와 새로운 인식의 태동

: 삶을 기억하라, 인생의 위대하고 훌륭한 걸작은 올바르게 사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최초 고발 《보헤미아의 농부》

종교개혁이 만들어낸 죽음의 새로운 시각

철학한다는 것은 죽음을 배우는 것

 

5장 생의 무상을 노래한 바로크 서정시

: 세상을 즐기는 가운데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허무 사이의 눈부신 긴장이 있다.

기독교적 죽음의 기쁨

모든 것이 헛되고도 헛되도다

현세지향적 죽음의 인식

삶과 죽음의 성숙

 

6장 아름다운 죽음을 향한 계몽주의 정신

: 사랑은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주어진다.

이성과 합리주의에 의한 허무주의의 극복

죽음은 아름답고 평온한 것 《고대인은 죽음을 어떻게 형성했는가?》

 

7장 감상주의와 질풍노도시대의 죽음

: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곧 자유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천재적 영감과 자연적 충동

천재시인들은 죽음을 어떻게 형상화했는가

 

8장 고전주의와 죽음의 정복을 향한 괴테의 문학

: 죽음은 공포도 끝도 아니다. 삶으로 돌아와 우리를 가르친다. 죽음은 삶이 된다.

죽어서 태어나라

베르테르는 왜 죽음을 선택했는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9장 현세를 넘어 내세로 나아가는 낭만주의적 죽음

: 낭만적 인간은 삶이 오직 사랑과 죽음을 통해서 완성되고 불멸한다고 생각한다.

상상과 현실의 결합이 만들어낸 내세적 죽음관

무한과 신과의 합일을 위한 자기 파괴로서의 죽음, 초기 낭만주의

성애적ㆍ종교적 사랑의 죽음, 후기 낭만주의

진정한 낮은 밤이다,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

 

10장 상징주의와 릴케의 삶을 찬미하는 죽음의 노래

: 죽음은 끊임없이 참된 삶의 의미를 밝혀내는 생존의 거울이다. 죽음을 알면 삶의 의미가 더욱 풍요로워진다.

릴케의 생애와 문학 속의 죽음

작은 죽음과 고유한 죽음

삶의 긍정을 위한 죽음의 극복

 

11장 삶의 친화력을 강조하는 근현대의 죽음

: 시인은 지상에서 죽음 없이 시를 쓰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토마스 만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

사회 비판적 모호한 죽음, 초기 단편들과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디오니소스적ㆍ에로스적 죽음 《베니스에서의 죽음》

선과 사랑을 위한 아폴로적ㆍ휴머니즘적 죽음 《마의 산》

 

12장 생산력으로서의 죽음을 보여주는 현대극

: 죽음은 밝은 미래를 열어주는 생산력으로 파악되는 삶의 한 기능이다. 죽는 것을 배워라. 배우면서 죽어라.

하이너 뮐러의 역사관과 죽음의 미학

삶의 생산적 기능으로서의 폭력과 죽음 《마우저》

여성의 죽음과 성 메타포

 

에필로그_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미주

찾아보기

출판사 리뷰

 

이창복 교수의 독일문학 산책 ‘삶을 위한 노래, 죽음’ 편

독문학사 최초 죽음 본격 연구, 인생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한 대작

 

“어느 늦가을이었다. 길 위엔 낙엽이 치워지지 않은 채 수북이 쌓여 있었고, 발밑에 밟힌 낙엽이 바삭하며 부서지는 소리가 신음처럼 들려왔다. 가볍게 스치는 미풍에 낙엽이 춤추듯 너울거리며 내려왔다. 정말 아름다웠다. 순간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도 저 낙엽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네!” “어렵죠,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아내가 알아듣고 건넨 말이다.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10p)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모든 인간에겐 태어난 순간 하나의 화살이 쏘아진다. 그 화살은 날고 또 날아서 죽음의 순간에 그에게 이른다”는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의 말처럼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죽음과 만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죽음을 외면한 채 터부시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죽음은 예부터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이었다.

독일문학의 석학 이창복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독문학)의 신작 《삶을 위한 죽음의 미학》이 출간되었다. 전작 《고통의 해석》(김영사 출간)에 이어 이번에는 ‘삶을 위한 노래, 죽음’ 편이다. 불가사의하지만 매혹적인 죽음을 노래한 불멸의 명작을 찾아서 인생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한 대작이다. 철학 역사 종교 심리 예술을 넘나들며 죽음의 본질을 통합적으로 탐구하고 심미적인 해석을 시도한 우리 독문학계 최초의 연구서다.

저자는 인생을 관통하는 문학작품을 통해 인간의 죽음과 존재의 의미를 사색하고 성찰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삶과 죽음의 아름다운 상호작용에서 제시되는 문제들이 비록 시대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지만 일관된 핵심적 주제가 있다.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인류에게, 아니, 오늘을 살고 있는 바로 우리에게 숙고와 해답을 요구하는 하나의 총괄적 질문을 던진다. 바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이다.

 

 

“죽어라, 그리고 태어나라”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레싱, 노발리스, 릴케, 토마스 만, 뮐러까지

독일 대문호들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인생 찬가

 

저자는 고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계몽주의, 고전주의를 거쳐 낭만주의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독일 대문호들의 빼어난 작품들을 통해 삶과 죽음의 관계를 추적한다. 죽음이 그 시대의 사조에 어떻게 수용되어 인간의 삶을 정화시켰으며, 어떻게 성숙한 죽음을 만들었는지를 고찰한다. 철학이나 신학이 추구하는 소위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개념적 질문보다는 비록 허구일지라도 문학작품에서 표현된 죽음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서 사유할 수 있는 구체적·심미적 질문에 대한 연구가 이 책의 목표이다.

우리는 문학의 이야기들이 주는 다양한 죽음의 간접경험을 통해, 내 죽음의 문제에 대해 사색하고 성찰할 수 있으며 또한 앞서 산 사람들과 동시대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사유와 지혜를 학습할 수 있다. 또한 아무도 모르는 죽음 후의 세계를 실감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영원한 창조적 도전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해석해내는 데 있어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삼은 이유이다.

“철학은 죽음에 대한 지식의 종류와 출처에 대해서 묻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즉, 죽음의 논리적 의미해석을 위해 노력한다. 죽음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현세의 삶과 연계해서 종교적 영역에 속하는 영생과 불멸의 문제를 다루면서 죽음에 새로운 생명의 의미를 부여한다. 심리학은 죽음과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상태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문학은 위의 학문과는 궤를 달리한다. 문학작품은 죽음의 개념추구나 심리적 분석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과 그 삶이 끝나는 죽음의 현상을 문학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특이한 표현력으로 때론 허구적ㆍ감각적ㆍ감성적으로 형이상학이 아닌 사실적 영역에서 가시화한다. 이렇게 가시화된 것은 어떻게,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를 사유케 한다.”(19쪽)

 

 

“죽어가는 삶을 살 것인가, 살아 있는 죽음을 맞을 것인가”

 

사실 삶의 길은 늘 평탄하지만은 않고, 견디기 어려운 시련과 고통이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쉽게 결론을 얻지 못한다. 사람은 삶의 의미를 생각할 때 가장 진지해진다. 레싱에 의하면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삶을 불평할 수 있고, 삶의 상실을 슬퍼할 권리가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죽음은 인간적 삶의 소명을 일깨워주는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의 불가분한 관계와 아름다운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올바른 삶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평생 마음속으로 채근하면서 살도록, 이젠 질문이 아닌 하나의 좌우명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죽음에 대한 새롭고 깊은 이해를 만나게 한다.

“산 자는 죽은 자의 눈을 감겨주지만, 죽음은 산 자의 감겨진 눈을 뜨게 한다. 삶을 두려워하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아름다운 삶을 사는 자는 그 죽음 또한 아름다울 것이다. 이 삶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자는 죽음을 사랑하고 감사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한 질문이 엄습해온다. 너는?”(14-15쪽)

삶 없이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 없이 삶은 없다. 인간은 죽어가면서 삶을 새롭게 발견한다. 죽음이 인간의 삶을 성숙하게 만든다면, 인간의 삶은 죽음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삶의 성숙은 죽음의 성숙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묻게 되고, 자신의 삶의 길이 올바른지를 성찰하게 된다. 

 

? 아우구스티누스 《참회록》

: 중세 기독교 윤리의 강력한 구조의 기초를 만든 죽음과 죄에 대한 생각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음의 지배가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가를 설명한다. 그는 네 가지 죽음의 종류를 제시한다. 첫째는 영혼이 죄의 대가로 육체에서 떠나는 ‘육체의 죽음’이다. 그다음 육체적 죽음 이후에 영혼이 최후의 심판으로 신에게서 떨어져나갈 때의 ‘영혼의 죽음’이다. 이때 살아 있을 때 선행을 행한 자는 천국으로 가고, 죄지은 자의 영혼은 육체와 다시 합쳐져서 소위 묵시록이 말하는 지옥의 불바다에 던져져 영원한 벌을 견뎌야만 하는 제2의 죽음(묵시록 20:14)을 맞이한다. 이것이 세 번째의 죽음인 ‘영원한 죽음’으로 전체 중세시대 사람들에겐 가장 두렵고 소름끼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었다. 네 번째 죽음은 ‘정신적 죽음’이다. 이 죽음은 살아 있는 동안에 신을 보지 못하고, 이미 영혼이 신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영혼은 영원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죽음의 종류는 오로지 부정한 사람들에 해당한다. 이러한 죽음과 죄에 대한 생각은 중세 기독교 윤리의 강력한 구조를 위한 기초를 형성했다.

 

? 요하네스 폰 테플 《보헤미아의 농부》

: 죽음에 반항하는 최초의 인간

 

죽음에 대한 개념의 변천사에서 볼 때, 요하네스 폰 테플의 이 작품은 최초로 인간과 죽음 사이의 논쟁이라는 매우 중요한 사건을 다루면서 다른 어떤 작품보다 매우 새롭고 경탄할 만한 가치를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을 전멸시키는 성난 자여, 온 세계의 해로운 합법성이여, 모든 인간의 무서운 살인자여, 그대 죽음이여, 그대에게 저주가 있어라! 그대의 창조자이신 신은 그대를 증오하고, 더없는 재앙이 그대에게 머물고, 엄청난 불행이 그대와 함께 살지어다. 영원히 명예는 완전히 빼앗길지어다! 그대가 떠도는 곳에 두려움, 곤경 그리고 비탄이 그대에게서 떠나지 말라. 고뇌, 비애 그리고 근심이 어디에서나 그대와 동반하라. (…) 파렴치한 악한이여, 그대의 나쁜 기억이 끝없이 살아 지속할지어다. 그대가 사는 곳에 언제나 전율과 공포가 그대에게서 떠나지 말지어다.

 

테플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교회의 교의학적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문주의 개념으로 발전한다. 작가는 농부의 문제를 인류 전체로 확대한다.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냉혹함을 체험하기 때문에, 농부가 최초로 죽음에 맞서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연한 자세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된다. 

 

? 레싱 《고대인은 죽음을 어떻게 형성했는가?》

: 죽음은 아름답고 평온한 것

 

레싱의 이 논문은 ‘죽음의 의인화된 추상 개념인 죽음의 신성함’을 계몽적 현세주의 개념에서 학문적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고대인은 죽음을 무서운 주검이나 해골이 아니라, 횃불을 거꾸로 들고 있는 아름다운 젊은이의 모습을 한 죽음의 수호신으로 ‘잠의 쌍둥이 형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죽음은 결코 섬뜩함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리고 죽는 것이 죽음을 향한 발걸음에 불과한 것이라면, 죽는 것은 결코 섬뜩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 저렇게 죽는 것, 바로 지금, 이런 상태에서 이런저런 의지에 따라 욕설과 가책으로 죽는 것은 섬뜩할 수 있고 또 섬뜩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죽는 것은, 그리고 죽음은 섬뜩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죽음은 이 모든 섬뜩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끝이다. 그리고 언어가 이 두 가지 상태, 즉 불가피하게 죽음으로 귀착하는 상태와 죽음 자체의 상태를 동일한 말로 표현할 경우, 이는 오직 언어의 빈곤에서 생긴 문제일 뿐이다.

 

고대인은 죽음을 주검이나 해골을 통해서 무섭고 섬뜩하게 표현하지 않고, 사랑으로 표현했다. 다시 말해서 고대인은 죽음을 모든 육체적 고통에서의 해방으로, 영혼의 안식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죽음’은 섬뜩함이 없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아름다운 것이 조형예술의 대상이 되어야 하듯이, 죽음도 아름다운 표현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레싱의 생각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죽음을 일종의 행복한 영속으로 생각하고, 죽음을 아름답게 맞이할 수 있게 된다고 레싱은 말한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죽음은 공포도 끝도 아니다. 삶으로 돌아와 우리를 가르친다. 죽음은 삶이 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771년 5월 4일에서 1772년 12월 23일 사이에 베르테르의 가상 친구인 빌헬름에게 보낸 서신들과 편지의 첨가문으로 구성되었다. “떠나고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 사랑하는 친구여”로 시작하는 ‘떠남’의 메타포는 죽음을 암시하는 ‘여행’으로 이어지듯이, 이 작품에는 죽음의 문제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베르테르의 자살은 한 시대를 넘어서 모든 시대에 자살하는 사람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느 곳, 어느 때를 막론하고 베르테르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괴테가 베르테르의 자살 행위를 어떤 이념에서 형성했으며, 괴테가 시공을 넘어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 생겨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제목의 이야기, 그 안에서 나는 한 젊은이를 묘사한다. 그는, 그에게 부여된 깊고 순수한 느낌과 진정한 침투력으로, 몰려오는 꿈속에 잠기고, 사색으로 자신을 파괴해서, 결국에는 다가오는 불행한 격정에 의해서, 특히 끝없는 사랑에 의해서 녹초가 되어 머리에 총알을 쏜다.

 

? 노발리스 《밤의 찬가》

: 낭만적 인간은 삶이 오직 사랑과 죽음을 통해서 완성되고 불멸한다고 생각한다

 

노발리스는 전기 낭만주의에 속하는 작가로 사랑과 죽음과 종교를 예술적 형식으로 가장 잘 표현한 최초의 낭만주의 시인이다. 노발리스는 단 15분 만에 사랑에 빠졌던 소피, 그리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을《밤의 찬가》에서 표현해냈다.

 

내려가자. 저 사랑스런 신부에게로,

사랑하는 그이, 예수에게로,

안심하오, 황혼이 깃드오,

사랑하는 사람들, 슬픈 사람들을 위해,

꿈이 우리의 속박을 풀고 

우리를 아버지의 품으로 잠기게 하오.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는 낭만적인 죽음을 포용한 최초의 위대한 작품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체험은 그의 짧은 생존 기간 내내 그의 주위를 떠돈다. 그리고 애인을 따라 죽으려는 결심은 그녀와의 결합을 위한 의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진지하다. 애인에 대한 사랑은 죽음을 극복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같게 표현되고, 이 일치는 노발리스의 가장 깊은 체험이고 확신이다. 죽음의 쾌락은 낭만주의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가장 고유한 것이고 가장 내면적인 것이다. 노발리스는 죽음을 삶의 낭만적 원칙이라고 말한다.

 

? 토마스 만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 시인은 지상에서 죽음 없이 시를 쓰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시인들은 늘 죽음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 정말로 삶과 친밀한 자는 또한 죽음과 친밀한 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지상에서 죽음 없이 시를 쓰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매일 슬픔과 동경에서 자신을 생각하지 않은 시인이 어디에 있을까.

 

토마스 만의 말처럼 그의 작품을 대하면 사람들은 곧 죽음의 테마에 직면하게 되고, 여러 상이한 상황들에서 중심인물의 죽음을 연상케 하는 특징이나 동기가 나타나 있음을 알게 된다.

토마스 만의 최초의 장편소설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한 가정의 몰락》은 부제목 “한 가정의 몰락”이 말해주고 있듯이 토마스 만의 가정과 자신을 모델로 해서 4대에 걸친 한 교양시민 가정의 몰락을 묘사한다. 여기서 한 가정의 몰락에 대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이 소설은 한 가정의 몰락뿐만 아니라 인습적인 옛 질서의 파괴라는 데에서 “오늘날 독일어로 된 최초의 사회소설로서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의 몰락과정은 강인하고도 현실적인 시민성에서 나약하고도 감상적인 예술성으로의 발전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집안이 망하면 죽음이 온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죽음이 뒤따른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퇴보하고 있어. 하강국면이야, 종말의 시작이야.

 

‘나는 살 것이다.’ 토마스는 거의 외치듯이 말했다. 그리고 이때 자신의 가슴이 내면의 흐느낌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시민성의 상실과정에서 병과 음악, 삶과 죽음과 같은 중요한 동기들이 상호관계를 이루고 문학적 비유를 통해서 묘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