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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판결의 재구성

저자 도진기
브랜드 비채
발행일 2019.04.23
정가 14,800원
ISBN 978-89-349-9551-7 03810
판형 131X204 mm
면수 356 쪽
도서상태 판매중
종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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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작가 도진기가 20년의 판사 생활을 통해 들여다본

가장 뜨거웠던 30번의 판결!

 

‘김성재 살인사건’부터 ‘낙지 살인사건’까지… 우리는 ‘그 사건들’을 잘 안다. 뉴스로 보고 신문으로 읽었으며 때로는 TV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사건의 발자취를 세밀하게 따라가기도 했다. 그런데, 판결에 대해서는 어떨까? 판결은 대부분 우리의 속도보다 느리다. 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까지 갔다가 파기환송되면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이처럼 긴 여정 끝에 나온 판결이 대중의 상식과 다를 때는 또 얼마나 많은가. 오늘, 우리의 판결은 어디쯤 와 있는가. 현직 부장판사를 거쳐 변호사로, 법률가이자 작가로 활동해온 도진기가 판결의 안쪽을 해부하듯 들여다본 《판결의 재구성》이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저자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판결을 향한 묵직한 메시지는 물론, 촌철살인의 비평과 읽는 재미까지 놓치지 않은 논픽션이다. 

 

책 속에서

 

솔로몬 같은 판관이 개별 사안에서 지혜를 발휘해 현명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판의 원형적 모습일 것 같다. 하지만 솔로몬이 늘 옳은가? 만일 그가 미친다면?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온다면? 솔로몬도 감정이 있는데, 미운 놈 오면 괜히 없던 죄도 뒤집어씌우고, 벌을 더 줄 수도 있지 않나? 아니, 솔로몬은 괜찮은 사람이니까 믿을 만하다고 치자. 그런 판사가 수십, 수백, 수천 명으로 늘어난다면, 그래도 다 개인의 인격을 믿고 맡겨야 할까?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절차를 만들어놓았다.

20페이지

 

판사 입장을 무작정 대변하려는 건 아니다. 합리적 의심이라고 하지만, 그 의심은 ‘상식적’이어야 한다. 상식적인 판단과 다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상식적이어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야 최소한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

35페이지

 

판례에서 수없이 언급되는 ‘전체적, 종합적 고찰’은 다른 말로 하면 확률론이다.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완전한 증명력을 갖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는 살인사건의 재판에 종종 인용된다. 풀어보면, 각각의 증거들이 범죄를 입증할 개별 확률은 높지 않다 해도 그것들이 한 사건에 다 모일 확률은 얼마나 낮은가, 하는 의미가 되겠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면, 이 사건도 확률론으로 ‘일정한 정도’의 입증력을 보완해 판단하는 것이 영 무리한 일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법의 판단은 끝났다. 남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119-120페이지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은 필요한 입증 정도가 다르다. 민사재판에서는 원고와 피고 중 조금이라도 증거가 많은 쪽이 이긴다. 반면에 피고인 한 명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형사재판은, 열 명의 도둑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마라는 원칙하에 고도의 입증을 요구한다. 민사에선 51퍼센트의 증거로도 승소할 수 있지만, 형사에선 99퍼센트의 증거도 모자랄 때가 있다. 증거의 수준이 이 중간 지점에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결론이 갈릴 수 있는 것이다.

168페이지

 

  • 도진기 (저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이 되었고, 2010년 단편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8년 동안 주중에는 판사로,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살면서 장편소설 여덟 편을 발표했다. 2017년 2월,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나 변호사가 되었다. 발표한 작품으로 변호사 ‘고진’이 등장하는 《붉은 집 살인사건》 《라 트라비아

타의 초상》 《정신자살》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진구’를 주인공으로 한 《순서의 문제》 《나를 아는 남자》 등이 있으며 논픽션 교양서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로 법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기도 했다.

차례

 

들어가며

 

1부

정의감과 정의 / 2004년 사라진 변호사 사건

관점으로 모든 것이 바뀐다 / 1997년 이태원 살인사건

합리적 의심의 한계 / 2010년 낙지 살인사건

극단의 무죄추정 / 2014년 캄보디아 아내 보험살인 의혹 사건

자유의지라는 환상 / 2016년 시흥 딸 살인사건

일사부재리, 무너지다 / 1998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

김성재 살인사건 다시 보기 / 1995년 김성재 살인사건

화차를 탄 용의자 X / 2010년 부산 시신 없는 살인사건

살인이 아닐 확률 / 2003년 동두천 암자 살인사건

정당방위란 무엇인가 / 2015년 공릉동 살인사건과 2014년 도둑 뇌사 사건

한국판 아만다 녹스 사건 / 2011년 역삼동 원룸 사건

범죄의 동기 / 2017년 약물로 아내 살해한 의사 사건

공범자의 진술 / 1995년 100억대 재산가 살해 암매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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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20대의 책꽂이

망량의 상자

중립의 지옥

 

2부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의 충돌 / 2008년 훈민정음 해례본 사건

누가 음란성을 판단하는가? / 1992년 《즐거운 사라》 사건

현대미술과 법 / 2016년 조영남 화투 그림 사건

담배와 칼 / 영화 속의 담배와 칼, 욕설

타인을 도울 의무 / 2010년 서울역 노숙자 방치 사망사건

GTA가 있는 세상 / 2014년 셧다운제 결정

법이 혼인을 보호할 수 있을까 / 2015년 대법원 이혼 ‘유책주의’ 판결

Size Does Matter /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폭탄

상급심은 늘 더 옳은가 / 2015년 KTX 승무원 대법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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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를 지옥으로!

GOTH

부자로 살기 위하여

 

3부

절차란 무엇일까 / 2017년 불법촬영 무죄 사건과 미란다 원칙

사망시각 전쟁 / 1995년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외부 침입자 / 1992년 김순경 살인 누명 사건

잘못을 되돌리는 방법 / 1999년 삼례 나라슈퍼 사건

배심재판의 미래 / 2013년 인천공항고속도로 사망사건

포청천과 황희 정승 / 앵커링 효과와 재판의 형평성

재판의 품격 / 양승태의 상고법원 추진

공소시효와 태완이법 / 1999년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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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억

판타지와 현실 사이

사과는 조건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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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다루는 사건과 판결들

찾아보기

 

 

13. 작가의 한마디

이런 의문을 갖게 된 건 작가생활을 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판결문을 찬찬히 읽었을 때 낯선 것들이 보였다. 불완전했고, 거친 논리가 럭비공처럼 튀고 있었다. 이런 논리로 올바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데도 ‘유전무죄만 아니면’ 되는 걸까. 나는 그동안 정말 판결이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판사가 ‘우리’여서 무의식적으로 편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 순간, 판결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출판사 리뷰

 

“그때 그 판결들, 정말로 동의하십니까?”

도진기, 사건이 아닌 판결을 들여다보다

 

《판결의 재구성》에는 모두 서른 건의 판결 이야기가 실려 있다. 1부에서는 가장 뜨거웠던 열두 건의 사건과 판결을 낱낱이 분석한다. ‘시흥 딸 살인사건’과 ‘역삼동 원룸 사건’처럼 광기와 잔혹함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은 물론, ‘김성재 살인사건’과 ‘낙지 살인사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재판 결과로 공분을 산 판결도 다루었다. 2부에서는 아홉 건의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를 둘러싼 이슈들로 눈을 넓힌다. ‘셧다운제’와 ‘이혼 유책주의 판결’처럼 생활에 밀접한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분석하기도 하고,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이 얽히고설킨 ‘훈민정음 해례본 사건’, 문학작품에 내재된 음란성을 법으로 처벌한 ‘즐거운 사라 사건’ 등을 다루었다. 3부에서는 아홉 건의 판결을 통해 판결의 내일을 내다본다. 재심 끝에 뒤늦게 진실이 밝혀진 ‘삼례 나라슈퍼 사건’과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법(태완이법)으로 이어진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등을 다루고, 판결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앵커링 효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각 부의 말미에는 저자가 틈틈이 쓴 짧은 수필과 서평이 실려 잠시 긴장을 풀게 한다.

 

 

“사법부의 결정은 따라야 한다.

그러나 판결의 논리에마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판사 20년, 변호사 10년. 그리고 ‘현직 부장판사 소설가’로 이색적인 데뷔를 한 이래 작가로서 보낸 10년…. 《판결의 재구성》은 법률가와 작가라는, 언뜻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역할을 하며 살아온 도진기만이 쓸 수 있는 글인지도 모른다. 작가 역시 서문을 통해 작가 생활을 한 덕택에 판결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어느 날, 문득 판결문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는데, 그 논리가 불완전하고 거칠어서 이런 논리로 올바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는 것이다. 판결을 향해 꼬리를 문 질문들과 “그동안은 판사가 ‘우리’라고 여겼기에 무심히 넘어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이 책은 시작되었다. 자료 조사에만 1년이 넘게 걸렸고, 판결문을 구해서 꼼꼼히 읽고 분석했다. 깊이 들여다본 판결의 안쪽에는 생각보다 허점이 많았다. 저자는 사건의 선정성을 전시하거나 세간의 풍문을 옮기는 대신 판결의 논리와 근거, 유무죄를 가른 추론과정을 해부하듯 들여다보기로 마음먹었다. 두 달 전 출간된, 판사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합리적 의심》도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쓰였다.

 

이 책의 부제는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이다. 그 유명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외침처럼 돈 많고 권력 있는 자들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시민의 눈에는 그것이 사법제도의 가장 큰 문제인 양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 시민이 법원에 호소하는 사건 대부분은 유전무죄, 혹은 정치나 진영 논리와 거리가 멀다. ‘법대로 하자!’라는 외침에는 올바른 판결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줄 거라는 믿음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지금이야말로 판결의 안쪽을 한번쯤 들여다보고, 더 나은 판결을 위해 고민할 때라고 말한다. 판결의 논리와 상식이야말로 시민의 ‘믿는 구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