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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혜암

저자 혜암 큰스님, 혜암선사문화진흥회, 유철주
브랜드 김영사
발행일 2018.04.30
정가 16,000원
ISBN 978-89-349-8147-3 03220
판형 145X210 mm
면수 378 쪽
도서상태 판매중
종이책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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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 죽는 것이 사는 길이다

서릿발 같은 가르침으로 한평생 불자들을 이끈 ‘스승 혜암’

혜암 대종사 탄신 100주년(2020) 기념 불제자 25인의 회고록 출간

대한불교조계종 10대 종정을 지내며 세수 82, 법랍 56년에 이르는 동안 끊임없는 가르침으로 불자들을 이끌어온 혜암 큰스님의 가르침의 기리는 회고록 《스승 혜암》이 나왔다.

혜암 큰스님의 제자들이 모여 만든 ‘혜암대종사문도회’는 큰스님의 가르침을 사회에 회향하고자 ‘사단법인 혜암선사문화진흥회’를 설립해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고록 출간도 그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혜암 큰스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고 그 올곧은 삶을 직접 목격한 제자 및 대덕스님들과 재가자 등 25인이 선방에서, 부엌에서, 마당에서, 또는 깊숙한 숲 속 암자부터 대중이 모인 강당에까지, 혜암 큰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조각조각 기억을 모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제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혜암 스님의 큰 가르침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인간 본래의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혜암 큰스님의 가르침은 커다란 감동이 될 것이다.

 

 

책 속에서

 

* “불사를 할 때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여기서 나만 잘 살기 위해 불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집이 있어야 수행자가 온다’고 저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어요. (p. 102_종성 스님의 말 중에서)

 

* 큰스님께서는 ‘그러면 삼배를 하고 때를 밀어라’라고 하셨어요. … 그러거나 말거나 혜암 큰스님께서는 다 내려놓은 채로 목욕탕 바닥에 결가부좌하고 앉아서 절을 받으셨어요. 큰스님께서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직 수행자이기를 원하셨습니다. (p. 128_혜국 스님의 말 중에서)

 

* 선방대중을 경책하실 때는 정말 호랑이 같았습니다. 장군죽비로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무서웠어요. 방선 시간에 수행에 대해 여쭈면 또 그렇게 자비로우셨어요. (p. 183~184_향적 스님의 말 중에서)

 

* 혜암 큰스님께서는 한문과 일본어로 된 여러 경전과 선어록을 보고 계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시냐’고 여쭈니 ‘상당법문 초안을 만들고 있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록의 내용을 확인하고 직접 손으로 내용을 정리하셨습니다. (p. 211~212_원택 스님의 말 중에서)

 

* 제가 강원에 있을 때 직접 본 것입니다. 그때 절에는 뱀이 자주 나왔어요. 우리 같으면 뱀을 잡아서 죽였겠지만 큰스님은 함부로 생명을 죽이지 않으셨어요. 뱀이 나오면 작은 나무로 뱀의 등을 찬찬히 쓰다듬으며 ‘보리심 일으켜라. 보리심 일으켜라’라고 말씀하시며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p. 236_해운 스님의 말 중에서)

 

* 선원에서 정진하고 있던 다른 대중스님들은 선어록 강의를 들으려고 정진시간에 좌복을 비웠는데, 큰스님만 큰방에 혼자 남아 정진하셨다고 합니다. … 해제 날, 동산 큰스님께서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기를 ‘이번 결제 동안에 제대로 공부한 수좌는 혜암이뿐이다’ 하시며 큰스님에게만 안거증을 수여하셨다고 합니다. (p. 253_대오 스님의 말 중에서)

 

* 사람들은 의심합니다. 큰스님은 정말로 눕지 않았는지, 하루에 한 끼만 공양하셨는지 말입니다. 저는 큰스님이 열반하실 때까지 곁을 지켰습니다. 큰스님의 수행에 대한 의지와 실천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p. 290_각안 스님의 말 중에서)

 

* 저는 계속 큰스님을 생각하면서 제 공부를 이어가려 합니다. 어떤 순간순간이 되면 ‘큰스님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하며 판단하고 실천합니다. 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 같은 존재가 바로 혜암 큰스님입니다. (p. 307_현각 스님의 말 중에서)

 

“보통 불자들이 찾아오면 스님들은 차도 내주시고 먹을 것도 주시면서 좋은 말씀을 해주시잖아요. 그런데 큰스님은 달랐어요. ‘똥자루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이 절 저 절 돌아다닌다’고 혼을 내셨습니다. … 그간 절에 다닌 게 너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혼났습니다. (p. 314~315_ 김옥선 보살님의 말 중에서)

 

 

  • 혜암 큰스님 (저자)

혜암 큰스님

1920 3 22일 전남 장성군 장성읍 덕진리에서 탄생하셨다. 1946 27세에 합천 가야산 해인사에 입산 출가하셨다. 인곡麟谷 대종사를 은사로, 효봉曉峰 스님을 계사로 수계득도하여 성관性觀이라는 법명을 받으셨다.

1947(28) 문경 봉암사에서 성철, 청담, 우봉, 자운, 보문, 도우, 법전, 일도 스님 등 20여 납자와 더불어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봉암사 결사를 시작하셨다. 이후 오대산 서대西臺, 동화사 금당선원, 통도사 극락암선원, 묘관음사선원, 천축사 무문관無門關, 지리산 칠불암 등 제방선원에 나아가 더욱 정진하셨다. 1993(74)에 해인총림 제6대 방장에 추대되셨다. 일일일식一日一食 장자불와長坐不臥 50, 일생을 청정한 계행과 철저한 두타행頭陀行으로 수행정진하시며 1999(80) 4월 조계종 제10

종정에 추대되어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다. 또한 재가불자들이 주말마다 용맹정진하며 열심히 공부하도록 가르치셨고, 365일 수행정진할 수 있는 ‘달마선원’을 손수 설계하여 지으셨다.

2001(82) 12 31일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에서 문도들을 모아놓고 “인과因果 역연歷然하니 참선 잘 해라” 당부하신 후 열반에 드셨다.

 

  • 혜암선사문화진흥회 (저자)

사단법인 혜암선사문화진흥회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대 종정, 원로회의 의장, 해인총림 방장 등을 역임하시고, 한국불교 개혁의 선구자로서 한국 현대불교사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신 혜암성관慧菴性觀 대종사의 숭고한 사상과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진흥함으로써 불교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2011년 창립하였다.

혜암대종사문도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혜암선사문화진흥회는 포교·교육·승가복지·사회복지사업, 장학·문화사업, 효사상 실천사업, 다문화 지원사업 등을 통하여 구도자적 불퇴전의 이정표를 제시한 선사이자 큰 인물인 큰스님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2020년 큰스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혜암대종사문집 정본화사업, 평전간행 등 출판사업을 비롯한 큰스님 수행처 순례사업, 학술대회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 유철주 (저자)

2003년 부처님 품 안에 들어와 <현대불교신문>, 《불광》, 《고경》 등 불교계 언론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쓴 책으로는 《산승불회》, 《진광불휘》, 《흠모》, 《스님의 물건》, 《위대한 스승 청화 큰스님》 등이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부처님 법()을 세상에 널리 알릴 계획이다.

목차

 

발간사…………………………………………………………………4

일천 강에 달이 되어 나투시니… ……………………………8

혜암성관慧菴性觀 대종사大宗師 행장行狀 ……………… 12

 

두 번이나 종단을 구한 호법신장

_조계종 원로의원 월주 스님… …………………………………… 21

종단사에 길이 남을 소중한 지도자

_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 …………………………………… 33

지혜와 자비를 겸비한 원력 보살 큰스승

_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 49

큰스님은 수행자들의 길잡이

_해인총림 전계대화상 종진 스님… ……………………………… 67

신심의 화신이었던 수행자

_조계종립 특별선원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79

모든 일에 걸림이 없던 지혜인

_해인사 홍제암 감원 종성 스님…………………………………… 93

공부에 모든 것을 바친 진짜 어른

_봉화 축서사 선원장 무여 스님………………………………… 105

강철 같은 수행자였던 우리의 스승

_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119

큰스님은 내 수행의 나침반

_금정총림 범어사 수좌 인각 스님…………………………………133

큰스님의 수좌 정신이 그립습니다

_팔공총림 동화사 유나 지환 스님…………………………………147

우리 곁에 오셨던 선지식

_혜암대종사문도회 회장 성법 스님… …………………………… 161

위법망구를 보여주신 어른

_해인총림 주지 향적 스님… ………………………………………175

내 인생의 수호자 혜암 큰스님

_강진 백련사 회주 여연 스님………………………………………187

돈오돈수의 정법을 실천하신 어른

_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 201

큰스님은 수좌의 왕

_함양 도솔암 주지 정견 스님………………………………………215

부처님처럼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신 분

_서울 경국사 주지 해운 스님…………………………………… 227

큰스님은 진정한 부처님 제자

_조계종 10대 종정 예경실장 대오 스님……………………………241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공부를 하게 해주신 스승…

_해인총림 방장 사서실장 능혜 스님…………………………… 255

휴식의 시간과 공간이 없었던 위대한 수행자

_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진각 스님…………………………… 267

모든 것을 닮고 싶었던 스승

_보성 봉갑사 주지 각안 스님………………………………………281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어른

_산청 성관선원장 현각 스님… ………………………………… 295

우리에게 큰스님은 광명이자 등불

_김옥선(대원성大圓性) 보살님… ………………………………… 309

아버지 같았던 영원한 큰스승

_이종수(송운松雲) 거사님… ……………………………………… 323

내가 의지했고 나를 지켜주신 스승

_김동건(대산大山) 변호사… ……………………………………… 335

평생 정법 수호에 진력하신 큰 어른

_연기영(백월白月)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 349

출판사 리뷰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 죽는 것이 사는 길이다

서릿발 같은 가르침으로 한평생 불자들을 이끈 ‘스승 혜암’

혜암 대종사 탄신 100주년(2020) 기념 불제자 25인의 회고록 출간

 

대한불교조계종 10대 종정을 지내며 세수 82, 법랍 56년에 이르는 동안 끊임없는 가르침으로 불자들을 이끌어온 혜암 큰스님의 가르침의 기리는 회고록 《스승 혜암》이 나왔다.

혜암 큰스님의 제자들이 모여 만든 ‘혜암대종사문도회’는 큰스님의 가르침을 사회에 회향하고자 ‘사단법인 혜암선사문화진흥회’를 설립해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고록 출간도 그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혜암 큰스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고 그 올곧은 삶을 직접 목격한 제자 및 대덕스님들과 재가자 등 25인이 선방에서, 부엌에서, 마당에서, 또는 깊숙한 숲 속 암자부터 대중이 모인 강당에까지, 혜암 큰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조각조각 기억을 모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제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혜암 스님의 큰 가르침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인간 본래의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혜암 큰스님의 가르침은 커다란 감동이 될 것이다.

 

강철 같은 수행자

 

큰스님께서 제일 강조하신 말씀은 ‘공부하다 죽어라’입니다. 금생에 공부를 끝내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죽을힘을 다해서 공부하면 내생에는 그 인연으로 더 빨리 공부를 마칠 수 있다는 뜻으로 ‘공부하다 죽어라’를 강조하셨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큰스님께서는 게으름과 잠을 제일 경계하셨고, 게으름과 잠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셨습니다. 평생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셔서인지 수행에 관한 태도는 확실하셨습니다.

_종진 스님 인터뷰 중에서

 

큰스님만 장좌불와(長坐不臥)와 일종식(一種食)을 하셔서 저희가 참 면목이 없었어요. 스승은 정진하는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해요. 그래도 차츰차츰 강도를 높여 큰스님과 함께 용맹정진을 한 것은 잘한 일 같습니다.

_여연 스님 인터뷰 중에서

 

대한불교조계종 10대 종정, 원로회의 의장, 해인총림 방장 등을 역임한 혜암 스님은 성철, 법정 스님에 이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선사이다. 하루에 한 끼만을 먹는 일일일식(一日一食), 평생토록 눕지 않고 정진하는 장좌불와(長座不臥)를 실천하며 고행정진으로 참선수행에 몰두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대쪽처럼 곧고 서릿발처럼 날카로운 성품의 혜암 스님은 평소 다섯 가지 엄격한 가르침을 강조했다. “공부하다 죽어라.” “밥을 많이 먹지 말라.” “안으로 공부하고 남을 도우라.” “주지의 소임을 맡지 말라.” “일의일발(一衣一鉢)로 청빈하게 살라.” 이러한 혜암 스님의 가르침은 여전히 모든 불자의 수행에 버팀목이 되고 있다.

 

늘 자비롭고 당당했던 어른

 

큰스님 모시고 정진을 하는데 제가 ‘쿵’ 소리와 함께 뒤로 자빠지니까 다른 스님들이 막 웃고 그랬어요. 제가 귀엽게 보이셨던지 큰스님께서는 죽비로 경책을 하시면서도 인자한 말투로 ‘잘 좀 해봐’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_정견 스님의 말 중에서

 

사업에 어려움을 겪던 거사님을 혜암 스님이 따로 불렀다.

“공부해야 할 사람이 일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면 어떻게 하나 보태서 쓰고 다시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혜암 스님은 준비한 1,000만 원을 거사님에게 건넸다. 1980년대 중반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거사님은 깜짝 놀랐다. 혜암 스님이 내려준 돈으로 거사님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_이종수 거사 인터뷰 중에서

 

혜암 큰스님은 호랑이 같이 엄하고 철저하면서도 늘 자비로움으로 후학을 이끄는 어른이었다. 후학들의 정진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난방 시설을 설치하기도 하고, 빵을 먹고 싶다는 학인들의 농담 섞인 한마디에 숲 속 암자에서 한달음에 내려가 빵을 사오기도 했으며, 사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신도에게는 주저 없이 전 재산을 내어주는 등, 대중에 대한 진정한 자비를 실천한 스승이었다.

 

이후락 일행은 비구들이 정진하던 선방에서 잠을 자겠다며 방을 점거했다. “당장 선방에서 나오라”며 호통을 친 혜암 스님은 보살님들이 기거하던 방에 이후락 일행을 데리고 가 철야정진을 시켰다. 혜암 스님의 선지와 당당함에 매료된 이후락은 철야정진을 하면서 발심을 하고 말았다.

_인각 스님의 말 중에서

 

어린 사미스님들이 산을 지키다 군인들한테 혼나고 얻어맞는 일이 많았어요. 이를 알게 된 동산 노스님께서 사중이 나서서 일을 해결하라고 말씀을 하셨는데도 묵묵부답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혜암 큰스님께서 군인들을 호통쳐 혼내고 관련 부대까지 찾아가 벌목을 못하게 하셨습니다. 큰스님의 당당함은 언제 어디서나 멋이 있었습니다.

_능혜 스님의 말 중에서

 

큰스님은 대중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우면서도 강자에게는 더 강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어린 사미스님들을 때렸던 군인들뿐만 아니라 당시 실세 권력자로 통하던 장관이나 국회의원, 주한미국대사 할 것 없이 그가 누구든 잘못된 행동을 보이면 가차 없이 호통을 쳤다. 탁발을 할 때에도 그 모습이 늘 당당했고, 그때마다 신도들은 환희심이 나서 보시를 하곤 했다. 스님의 자비심과 당당함은 수행자들로 하여금 더욱 수행에 정진하도록 하는 힘이었다.

 

종단사에 길이 남을 소중한 지도자

 

봉암사 결사부터 1994년 개혁불사, 1998년 분규 해결 등 종단 역사의 현장에서도 항상 중심을 잡았던 분이 바로 혜암 큰스님이십니다.

_진각 스님 인터뷰 중에서

 

1994년 종단개혁을 이끌어내고 1998년 분규를 해결할 때 큰스님의 단호한 역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종단은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고비 때마다 문제를 명쾌하게 풀어주셨습니다.

_지환 스님 인터뷰 중에서

 

혜암 스님은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성철, 청담, 우봉, 자운, 보문, 도우, 법전, 일도 스님 등 20여 스님과 함께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취지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시작했다. 봉암사 결사는 당시 한국불교 쇠락의 원인이 불교 근본정신의 상실에 있다고 보고, 부처님 당시의 생활방식의 회복, 계율의 엄격한 수호 등을 주요 실천사항으로 삼았다. 혜암 스님의 원력이 깃든 봉암사 결사를 통해 비로소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수행자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수행가풍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혜암 스님의 발자취는 비단 수행처에 머물지 않았다. 종단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혜암 스님은 발 벗고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추진력을 보였다. 1994년 조계종단 개혁불사와 1998년 분규 때에도 혜암 스님의 원칙주의적인 성품이 빛을 발했다. 당시 원로회의 의장으로서 불교의 정법을 수호하려는 혜암 스님의 추상같은 의지는 종단의 와해를 막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01 12 31일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에서 입적하기까지 종단 안팎을 넘나드는 혜암 스님의 행보는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의 인터뷰 진행과 원고 정리를 맡은 유철주 작가는 소회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 책을 진행하기에 앞서 혜암 큰스님의 법어집을 비롯한 여러 책과 언론의 기사들을 봤다. 말로만 듣던 큰스님께 다가서는 과정은 두근거림의 연속이었다. 자료 정리 후 큰스님 인연들을 만나면서는 두근거림이 확신이 되었다. 혜암 큰스님은 우리시대의 진정한 스승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누구보다 '간절한' 수행자였고 세상 앞에서는 누구보다 '당당한' 선지식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대불교사에서 혜암 큰스님처럼 간절함과 당당함을 가진 수행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기회가 된다면 큰스님의 법어집을 다시 정리하면서 큰스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일에 마음을 더 보태고 싶다.

추천사

 

“저는 근대 이후 한국불교에서 이 겸비한 스님을 몇 분 못 봤습니다. 큰스님은 이사를 겸비한 어른입니다. 혜암 큰스님은 저를 비롯한 모든 종도의 든든한 호법신장으로서 우리 불교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_조계종 원로의원 월주 스님

 

“혜암 큰스님은 우리 종단사에 길이 남을 소중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혜암 큰스님의 법향 法香 원당암과 가야산을 넘어 전국의 수많은 수행처에 계속 전해질 것입니다.

_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

 

“누구보다 간절하게 수행을 하셨고, 언제나 수좌의 당당함을 잃지 않으셨던 큰스님의 모습은 제가 앞으로 영원히 따라야 할 길로 남아있습니다. 큰스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_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큰스님은 신심 그 자체, 신심의 화신이었습니다. 신심 하나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큰스님의 그런 모습은 대중을 발심하게 했습니다. 공부와 수행이 납자의 본분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신 어른입니다.

_조계종립 특별선원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혜암 큰스님께서는 정말로 잘 사신 어른입니다. ‘인생무상’을 말씀하시던 모습이 너무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오직 공부만을 강조하셨던 어른이 정말 그리운 요즘입니다.

_봉화 축서사 문수선원장 무여 스님

 

“혜암 큰스님은 선지식이십니다. 미혹한 제자들과 대중을 가르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가신 부처님의 화신입니다.

_혜암대종사문도회 회장 성법 스님

 

“혜암 큰스님은 제 옆에서 저를 지켜주셨고 또 제가 의지했던 영원한 큰 스승이십니다. 원당암에서 느꼈던 맑은 바람의 기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_김동건(대산大山) 변호사

 

“정법을 수호하는 큰스승이십니다. 제가 법과대학장을 맡고 있을 때 ‘惟愛法爲師(유애법위사)–정법을 사랑함으로써 스승으로 삼아라’라는 글씨를 하사하셨는데, 지금도 저의 가보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_연기영(백월白月)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