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
저자 | 윌리엄 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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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담마코리아 |
브랜드 | 김영사 |
발행일 | 2017.07.12 |
정가 | 14,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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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49-7848-0 03200 |
판형 | 148X210 mm |
면수 | 304 쪽 |
도서상태 | 판매중 |
보편적이고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낸 위빳사나 명상의 진수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법 한국 최초 정식 출간
전 세계 25개국에서 출간된 명상 분야 스테디셀러
'있는 그대로 보다'라는 의미의 위빳사나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떠한 믿음이나 철학, 종교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사실 그대로를 관찰하도록 이끄는 이 명상법은 단순하지만 놀라운 효과 때문에 현대에 이르면서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더욱더 인정받고 있다.
세계의 수많은 명상법 중에서도 고엔카가 지도하는 위빳사나 명상은 특별하다. 붓다가 가르친 순수한 원형 그대로, 아무런 종파적 특색 없이 현대적인 언어를 통해 전달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권의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도 간단하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도와준다. 고엔카의 가르침을 자세하게 소개한 이 책은 25개국에서 위빳사나 명상을 대표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책 속에서
* 세상의 수많은 명상법 중에서 고엔카 선생님이 가르치는 위빳사나 명상법은 아주 특별합니다. 이 명상법은 간단하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함으로써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살게 해줍니다. 미얀마의 불교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위빳사나 명상법은 그 자체로서 어떠한 종파적 성격도 갖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도 받아들이고 수행할 수 있습니다. (p.11)
*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 어떤 것도 믿음 하나만 가지고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그것이 논리적인지, 실용적인지, 유익한지 검토해 봐야 합니다. 이성적으로만 따져 지적으로 진짜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진리가 유익하다면, 우리가 그것을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그것이 진짜임을 알 수 있습니다. (p.34)
* 진리를 직접 경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면을 바라보는 것, 자신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외부를 바라보면서 사는 데 길들여져 왔습니다. 우리는 항상 밖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남들은 뭘 하는지 관심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정신과 신체적 구조를,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실제를 탐구하려고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모른 채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무지가 얼마나 해로운지를, 얼마나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내면의 힘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p.38)
* 담마는 실천할 때에만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고통에서 평화로 가는 진정한 길이라면, 수행하면 할수록 더 많은 행복과 조화, 평화를 내면에서 느껴야 합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평화롭고 조화로워져야 합니다. 사회의 긴장을 키우는 대신에 모두의 행복과 안녕을 키우는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길을 걷기 위해서 우리는 담마의, 진리의, 순수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 가르침을 실행하는 참된 방법입니다. 바르게 수행한다면 담마는 삶의 기술(the art of living)입니다. (p.41)
* 진정한 ‘존재’라는 것은 없으며, 오직 계속되는 흐름, 지속적인 생성의 과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일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어느 정도 정의된, 변함없는 사람으로 대해야 합니다. 외부를, 눈에 보이는 실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요. 외부적 실제도 하나의 실제이긴 하지만, 피상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더 깊은 차원에서는 모든 우주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두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끊임없는 생성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 실제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아원자입자들의 흐름과 이 물질적 과정보다 더 빠르게 변하는 의식?지각?감각?반응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p.60)
* 그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첫 단계는, 그것을 실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철학이나 신념으로서가 아니라 사실로서, 삶 속에서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고통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고통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고통받는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조종당하는 것을 멈추고 직접 조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본성을 직접 깨닫는 법을 배우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p.78)
* ‘나’에 대한 집착은 끝도 없습니다. 이 집착은 ‘내 것’으로 확장됩니다. 우리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든 말이죠. 우리는 소유한 것에 대단한 집착심을 키웁니다. 그것이 우리와 관련되어 있고, 그것이 ‘나’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내 것’이라고 칭하는 것이 영원하고 ‘내’가 영원히 그것을 즐길 수 있다면, 이런 집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얼마 안 가 ‘나’는 ‘내 것’으로부터 분리될 것입니다. 이 분리의 순간은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 순간이 올 때 ‘내 것’에 매달릴수록 고통은 커질 것입니다. (p.92)
* 과거나 미래의 존재에 대해 믿든 안 믿든, 우리는 여전히 현재 삶에서 문제들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의 맹목적인 반응 때문에 일어난 문제들 말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문제들을 푸는 것, 반응하는 습관을 멈추고 고통을 멈추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지금 자유의 행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p.102)
* 담마는 ‘지금, 여기’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계발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자신의 실제에 주의를 집중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아나빠나-사띠가 바로 그런 방법입니다. 지금 이 순간 숨을 들이마시고, 지금 이 순간 숨을 내쉽니다. 이 수행을 통해 현재의 자신에 대한 알아차림을 계발하게 됩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우리는 현재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p.145)
* 이 반응하지 않는 능력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동시에 평정을 유지한다면, 그 순간 마음은 자유롭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명상 중에 몇 순간만 이런 경험을 할 것입니다. 그 몇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감각에 반응하는 오랜 습관으로, 마음은 갈망·혐오·고통의 오래된 바퀴 속에 허덕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명상하면서 그 짧은 순간들이 몇 초가 되고 몇 분이 되어 마침내 반응하는 오래된 습관이 사라지면, 이윽고 마음은 항상 평화롭게 됩니다. 이것이 고통을 멈추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멈추는 방법입니다. (p.188)
* 알아차림과 평정심, 이것이 위빳사나 명상입니다. 이 둘을 함께 훈련하면, 이것들은 당신을 고통에서 해탈로 이끌 것입니다. 하나가 더 약하거나 부족하면,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둘 다 필수적인 것입니다. 새가 날기 위해선 두 날개가 필요하고, 손수레가 움직이려면 두 바퀴가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똑같이 강해야 합니다. 한 날개는 약하고 다른 날개는 강하다면, 그 새는 제대로 날 수 없습니다. 바퀴가 하나는 작고 다른 하나는 크다면, 그 손수레는 계속 원을 그리며 맴돌 것입니다. 위빳사나 명상가는 이 길에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차림과 평정을 함께 계발해야 합니다. (p.199)
* 우리가 부지런히 지속적으로 수행하면, 조만간 감각의 성질이 변화하는 단계에 도달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엄청난 속도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단일하고 미세한 감각을 온몸에서 느낄 수 있는 단계를 맞게 됩니다. 이 경험을 통해 통합된 형태를 이루고 있던 상태를 꿰뚫음으로써 이 세상에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아원자입자의 기본 현상을 체험하는 단계를 맞게 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이 아원자입자들의 덧없는 성질을 직접 경험합니다. (p.228)
* 갈망과 혐오가 없다는 것이 자신의 해탈을 즐기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신경 쓰지 않는 냉정한 무관심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평정심을 제대로 표현하면 ‘신성한 무관심’입니다. 그것은 순수한 마음의 적극적인 표현이며 성질입니다. 갈망과 혐오가 없다는 것은 곧 마음의 창의적·역동적 자질, 마음의 순수함의 표현입니다. 모든 맹목적 반응의 습관에서 벗어나면, 마음은 처음으로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한 창의적이고 효율적이며 유익한, 긍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p.238)
*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공격할 때, 우리는 이 나쁜 행동이 중단되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우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 희생자에 대한 동정과 공격자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행동일 것입니다. 반면 위빳사나 명상가들은 그 둘에게 똑같이 연민을 느낍니다. 희생자는 자신을 보호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공격자는 불순한 행동으로 자신을 해쳤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p.260)
* 우리 자신의 몸이 진리의 목격자입니다. 명상가가 몸으로 진리를 경험하면, 그것은 그들에게 참된 진리가 되며, 그들은 그 진리와 일치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법을 배워 그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됩니다.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