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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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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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종이 박물관

저자 김경
브랜드 김영사
발행일 2007.11.14
정가 12,000원
ISBN 89-349-2703-7 0381
판형 신국판변형/ 153X196mm
면수 220 쪽
도서상태 판매중

한국인의 삶과 애환, 풍류가 담긴 종이 세간 이야기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종이, 한지. 옛사람들은 종이로 그릇도 요강도 만들고 술잔과 우산, 가방, 장롱도 만들었다.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삶의 애환과 풍류를 담아낸 종이 물건과 그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
새색시의 꽃 가마에 실려 간 부끄러운 종이 요강, 화려한 꽃 그림과 신비한 공간 분할이 걸작인 총명한 규수의 손가방, 객지 남편이 고향의 아내를 그리워하며 짠 눈물의 종이 신, 손자의 두뇌 훈련을 위해 특별 고안한 자상한 할아버지의 지혜지(知慧紙), 금슬 좋은 노부부가 합작품으로 만든 빗접상자, 먼 길 떠난 선비의 목을 축여준 앙증맞은 종이 술잔 등 당신의 눈과 마음을 매혹시킬 오래되고 진귀한 종이 세간 50선! 수십 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우리 고유의 종이 세간을 모으고 한지 재현과 보급에 힘써온 종이연구가 김경 선생의 생생하고 멋들어진 이야기와 사진작가 김중만의 아름다운 사진이 어우러진, 감동과 풍류가 있는 종이 박물관!

  • 김경 (저자)

1924년 출생. 1965년 안동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종이로 짠 요강을 발견하면서부터 종이수집가의 길로 들어섰다. 조선시대의 얼마 안 남은 종이 공예품을 사 모으기 위해 전국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작은 소품에서부터 묵직한 세간에 이르기까지 총 130여 점의 종이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종이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까지 바꾸었다. 틈틈이 한지 공부에 골몰하여 그 스스로 신라 최고의 종이인 ‘잠견지’와 ‘옥춘지’를 복원하였으며 최근에는 ‘고려지’를 복원하는 데 성공하였다. 1977년에 한매재라는 종이연구회를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 힘쓰며 활발한 전시회를 가졌다. 수집해온 종이 유물은 1986년 공간갤러리 전시를 통해 세상에 첫선을 보였고, 이후 88올림픽을 계기로 일본 동경 시즈오까 후지미술관에서 한국의 종이 유물전을 열어 우리 종이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 외 개인작품전으로는 1993년 서호화랑에서 열린 한지예술전이 로이터 통신을 통해 전 세계 180여 개국에 알려졌고, 이로 인해 1995년 프랑스 파리에서 종이 의상 초대전, 96년 베를린 종이예술전, 97년 하와이대 종이예술전, 99년 일본 긴자 유겐갤러리 초대전 등 총 10여 회의 개인 및 그룹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
국내외 종이예술계에서 김경은 잠견지 아트 분야의 개척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는 한사코 예술가라는 호칭을 사양한다. 그저 반평생 종이를 열심히 공부했으며 더불어 신나게 놀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시작하는 글/ 얘들아, 나들이 가자꾸나

1. 부끄러운 새색시가 좔좔좔 소피 누는 소리
2. 선비의 도포자락에 숨은 세숫대야
3.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시름도 깊어 가는데
4. 산마루에 떠도는 무심한 구름
5. 허리춤에 매달린 선비의 필낭
6. 접어도 접어도 다 숨기지 못할 소녀의 비밀 주머니
7. 좋은 친구와 함께 한 여행
8. 가늘고 섬세하게 춤추는 글자들
9. 지혜야 샘솟아라
10. 빗접상자를 얻으면 미녀가 온다네
11. 선비의 얌전한 갓 상자
12. 사람향기가 풀풀 나서 좋구나
13. 분명한 세상을 헛갈리게 하라
14. 괜한 인연은 아닌 걸
15. 글 읽는 선비의 밤을 밝혀준 등경걸이
16. 할일 없는 선비가 시간을 보내는 법
17. 노엮개로 캔버스를 만들어 호랑이를 그리다
18. 사이 좋게 백년해로 하여라
19. 여행자의 작은 버섯술잔
20. 종이 바랑 둘러메고 떠도는 인생
21. 세간을 팔아야 밥 한 끼 먹지요
22. 빼앗아온 보물상자
23. 서방님 손톱발톱 가지런히 담아두니
24. 죽을 때가 가까워야 팔 수 있답니다
25. 설마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겠지
26. 달력, 우주의 진리를 고민하다
27. 하늘의 지도를 따라서

마치는 글/ 종이와 더불어, 나는 섬으로 간다
 

소박한 종이에 담긴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읽는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 이 책의 저자인 김경은 우연히 안동에 여행을 갔다가 어느 대가댁의 사랑방에서 이상한 물건을 발견하였다. 등으로 엮은 바구니 같기도, 검은 옻을 입힌 항아리 같기도 나무로 깎은 그릇 같기도 한 작은 물건을 쳐다보고 있는 그에게 그 댁의 노마님은 종이로 만든 요강이라고 알려주었다. 종이를 짚 끈처럼 만들어서 둥글게 꼬아 올려가며 앙증맞게 빚은 뒤 칠흑처럼 검은 옻나무 진액을 안팎으로 꼼꼼히 발라 물이 새지 않도록 한 것이다. 노마님의 6대조 시할아버지가 손녀딸이 시집갈 때 꽃가마 안에 넣어준 것이라고 하니 못해도 300년이 넘는 물건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그 요강이 눈에 아른거렸던 저자는 그 후 세 번이나 안동을 들락거리며 때로는 선물 공세를 펼치기도, 때로는 잘 보이려고 그 집의 마당을 쓸고 부엌일을 거들면서 통사정을 하기도 한 끝에 가까스로 그 물건을 얻어냈다.
이렇게 우리 종이 물건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된 저자는 이후 인사동을 샅샅이 뒤지며 종이 세간을 사 모았다. 당시만 해도 골동품 수집가들은 그림이나 도자기, 나무 가구, 궁중에서 흘러나온 국보급 보물에만 관심을 가질 뿐 종이 따위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인사동에서 물건을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외출 시에는 꼭 손가방을 준비했다. 손가방 안에는 가벼운 홑이불 한 장과 세면도구, 빳빳한 지폐 20만 원을 넣은 휜 봉투가 있었다. 그는 집에 쌀이 떨어져도 이 20만 원을 풀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든 종이 물건이 있다는 소식만 들으면 어디든 당장 떠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사직동의 대감댁부터 경기도 이천, 충청도 천안과 예산 광천, 경상도의 상주 진주 안동, 강원도의 오래된 산사, 전라도, 제주도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수십 년간 130여 점의 종이 골동품을 모았다.
이 책에는 그 중에서 가려 뽑은 종이 유물 50여 가지가 담겨있다. 적게는 100년에서 많게는 300년 이상 된 물건들인데, 모습도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그에 얽힌 사연은 더욱 진귀한 ‘이야기가 있는 종이 박물관’이다.


술잔, 요강에서 장롱까지, 우리 삶의 중심을 차지한 오래되고 진귀한 종이 세간 50선
물에 넣으면 녹아버리는 대부분의 종이와 달리 닥으로 만든 우리 한지는 물속에 몇 시간씩 담그고 주무르고 치대도 살아남는 강한 종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종이보다도 물에 강한 이 종이로 옛사람들은 그릇도 함도 만들도 장롱도 가방도 만들었다. 비오는 날엔 한지로 만든 종이 우산을 쓰고 다녔다 하니 말 다했다. 기름을 먹이면 방수가 되니 더욱 실용적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종이로 만든 세숫대야도 등장한다. 옛날에 지체 높은 양반들은 외출을 할 때 두루마기의 도포자락에 부채와 필통, 종이 두루마리, 머리 빗는 기구를 담아두는 빗접상자 등을 넣었는데, 그러고도 한 팔짝이 남아돌아 종이 세숫대야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종이로 만든 이유는 들고 다니기 가볍고 편하라는 것이었다. 여행길에 덥고 땀나면 이 대야로 흐르는 시냇물을 떠 세수를 했고, 종가댁에 도착해서도 남들이 쓰던 세숫대야를 쓰지 않고 직접 가져온 종이 대야에 샘물을 길어 얼굴을 씻었다. 마당에 내려놓고 세수하면 품위가 없으니, 하인 한 명이 들고 세수하기 딱 좋은 높이로 받쳐주면 허리만 살짝 숙인 채로 세수를 했다고 한다. 옛날이니까 부릴 수 있던 멋이고 풍류이겠다(19쪽 ‘선비의 도포자락에 숨은 세숫대야’).
수십 년 전, 인사동의 어느 고미술품 가게에서 제주도의 해녀가 종이 신발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저자는 그 길로 제주도로 달려갔다. 그 신은 그 해녀의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만든 거라 했다. 서울 사람이었던 그는 웬일로 아내를 고향에 남겨두고 제주에서 오랫동안 객지 생활을 했는데, 늙고 병들어 죽는 날까지 아내를 잊지 못했다. 그 신발을 어렵게 구해 서울로 돌아온 저자는 호기심에 못 이겨 신발 바닥의 종이 한 오리를 풀어보았다. 꼰 종이에 무엇인가 쓴 흔적이 없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노엮개(지승紙繩, 한지를 지푸라기처럼 길게 잘라서 새끼를 꼬아놓은 것)는 글을 썼던 폐지를 활용해 만들기 때문에 분명히 글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과연 거기에는 글자가 있었다.

月白雪白天地白 (월백설백천지백)
山深夜深客愁心 (산심야심객수심)
山山水水巖巖回回 (산산수수암암회회)
松松柏柏處處奇 (송송백백처처기)
抽刀斷水水更流 (추도단수수갱류)
擧杯消愁愁更愁 (거배소수수갱수)

달도 희고 눈도 희고 하늘땅이 다 흰데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시름도 깊어라.
산에 산에 물에 물에 바위 바위 돌아 돌아
소나무와 잣나무 무성한 모양 신기하기도 하네.
칼자루를 꺼내 물을 베어도 물은 또 흐르고
한 잔 기울여 시름을 잊으려 해도 시름은 더 깊어지네.

마치 김삿갓의 시풍을 떠올리게 하는 그것은 해녀의 시아버지가 다시 볼 수 없었던 부인을 그리워하며 육필로 쓴 애절한 시구였다(28쪽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시름도 깊어 가는데’).
상투를 늘 단단히 틀고 살던 옛날의 점잖은 할아버지들은 어떻게 머리를 감고 말리고 빗고 하였을까? 아이들 보는 데서 머리를 풀면 어른의 품위를 잃던 시절이니 평소에 머리관리를 어떻게 하였을지 궁금하다. 저자가 충청도 예산의 어느 할아버지댁에 머리 빗는 기구를 담아두는 상자인 빗접을 구하러 갔다가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이렇다. 먼저, 새벽에 일찍 뒷동산에 올라간다. 바람이 부는 날이어야 한다. 머리를 활짝 풀어헤치고 얼레 빗질을 하면서 흔들어댄다. 그러면 바람결에 비듬이 다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몇 번씩 빗질을 한 뒤 다시 가지런히 하고는 슬며시 동산에서 내려와 사랑방으로 간다. 이때 망건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를 밀어 넣고 탕건을 쓰면 혹시 아이들과 마주친다 해도 감쪽같이 숨길 수 있다. 방으로 돌아오면 다시 상투를 트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빗접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화려한 꽃그림과 신비한 공간 분할이 걸작인 어여쁜 규수의 손가방, 장난감도 레고 블록도 없던 시대에 손자의 두뇌 훈련을 위해 특별 고안한 자상한 할아버지의 지혜지(知慧紙), 여인들이 지아비의 손발톱을 담아 보관하던 과거상자, 사직동 도장궁 옆 70칸 구옥의 노마님댁에서 힘들게 구한 궁중 보물상자 등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옛사람들의 웃음과 눈물, 애환과 풍류를 담아낸 종이 세간 속에는 한국인의 천 가지 표정, 만 가지 사연이 스며 있다. 오래되고 진귀한 종이 소품과 세간을 모은 이 책은 그러므로 종이 박물관인 동시에 한국인의 소박하고 진실한 삶과 추억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 박물관, 나아가 인류학 박물관이기도 하다.


부드럽고도 강인한 한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종이연구가 김경
저자 김경은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일념으로 세계 곳곳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도쿄, 하와이, 파리, 뉴욕, 베를린 등에서 종이 유물 전시회를 가졌고, 전시 중에는 간간이 우리 한지를 만드는 시연도 해보이곤 했다.
한지를 만들려면 먼저 닥나무 가지를 푹 삶아 껍질을 벗겨내고, 다시 속살만 잿물에 푹 삶아내어 나무 방망이로 곤죽이 되도록 두드려야 한다. 이렇게 닥죽이 만들어지면 여기에 닥풀즙을 잘 풀어서 장방형의 대나무발로 잘 흔들면서 종이를 떠내야 한다. 닥섬유를 골고루 잘 골라내는 기술과 잿물을 만드는 방법, 그리고 얼마나 여러 번 흔드느냐에 따라 종이의 질과 두께가 달라진다.
이처럼 한지는 나무를 물에 삶고 여러 번 빨고 건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만큼, 세계 어느 나라의 종이보다도 물에 강하다. 외국에서 시연을 할 때에, 그가 멀쩡하게 바짝 마른 한지를 대야 물속에 풍덩 담가서 마구 주무르면 외국인들은 경악을 하곤 했다. 그렇게 종이를 물에 빨면 녹아버려서 어쩌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참 비비며 빨던 종이를 다시 펴서 그늘에 말려 보여주면 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종이는 닥섬유의 결이 더 곱게 살아나서 마치 비단처럼 반짝거렸고 어느 한 곳 상처가 없었다. 제 존재의 상극인 물속에서 시련을 겪고 오히려 더 강해지는 한지에 대해서는 일찍이 <혼불>의 작가 최명희도 한국인의 민족성과 닮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73쪽 ‘최명희 작가의 나의 혼, 나의 문학’).
한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반평생 종이 유물을 모으고 모셔온 김경. 오랫동안 집에 쟁여두고 틈틈이 들여다보며 혼자만의 주인 행세를 하던 그가 이제 생생하고 멋들어진 종이 세간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는다. 사진작가 김중만의 아름답고 섬세한 사진이 어우러져 책을 보는 즐거움이 더욱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