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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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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2

저자 정찬주
브랜드 김영사
발행일 2006.03.01
정가 9,500원
ISBN 89-349-2117-X 03810
판형 신국판/ 152X223mm
면수 292 쪽
도서상태 절판도서
종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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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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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틀에 갇히지 않고 거침없이 도를 굴린 대자유인 경봉 큰스님 이야기

위엄이 있기는 늙은 사자 같고 마음은 훈훈한 봄바람 같으며, 주장자로 머리통을 내리칠 만큼 엄격했지만 한밤중에 알사탕을 갖다 줄 정도로 자애로웠던 자비의 화신 경봉 스님의 깊고 넓은 '화엄의 바다' 같은 생애와 사상.

경봉鏡峰 스님
189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경봉 스님은 어머니를 여읜 상실감으로 16세에 양산 통도사로 가서 성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해담 스님에게서 비구계를 받았다. 강원에서 공부하면서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반 푼어치의 이익이 없다[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는 구절에 크게 발심하여 경전을 접고 내원사, 해인사, 직지사, 마하연사와 석왕사 등 전국의 선방을 돌며 참선정진을 거듭했다. 통도사 안양암으로 돌아와 동구불출 정진으로 무문관에 들고, 극락암으로 옮겨 화엄살림법회를 주재하면서 용맹정진하던 중 36세 되던 1927년 12월 13일 새벽에 방안의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본 순간 홀연히 대도大道를 성취하였다. 이후 스님은 통도사 주지 등을 역임하고, 1959년 62세에 극락호국선원 조실로 추대되어 전국에서 찾아오는 선승들을 지도하며 선풍을 크게 떨쳤다.
스님의 가풍은 참선과 불학, 염불, 기도, 다도 등 불가의 모든 방편이 한데 어우러진 참으로 깊고도 넓은 '화엄의 바다'였다. 스님은 중생들이 힘든 삶을 고백하면 "이왕 사바 세계에 왔으니 근심걱정 놓아버리고 한바탕 멋들어지게 살라"고 하셨고, 수좌들이 공부가 안 된다고 물어 오면 당신의 수행담을 들려주시며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보라"고 말했다.
스님은 한국의 근현대 고승인 혜월, 만공, 용성, 만해, 한암, 제산, 효봉, 운봉, 동산, 향곡, 전강, 청담, 일타 스님 등과 격외의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기록들은 소중한 자료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세수 91세 되던 1982년 7월 17일, 시자 명정 스님이 "스님, 가시면 보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 스님의 참모습입니까" 하고 묻자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는 임종개를 남기고 대문의 빗장을 잠그듯 열반에 드셨다.

  • 정찬주 (저자)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오랜 기간 소설과 명상적 산문을 발표해왔다. 법정 스님은 저자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다. 현재 전남 화순 쌍봉사 옆 이불재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승려에서 항일투쟁 이론가로 변모하면서 중국 대륙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가혹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간 한 혁명가에 대한 진실의 기록이다. 작가는 반도와 대륙을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과 역사 속의 군상들을 생생하게 되살린 빛나는 문장으로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던 혁명가의 의지를 독자들의 심장에 각인시킨다.

그동안 저서로 장편소설 《다산의 사랑》 《소설 무소유》 《산은 산 물은 물》 《가야산 정진불》 《하늘의 도》 《다불》 《만행》 《대 백제왕》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산문집 《부처님 8대 인연 이야기》 《암자로 가는 길》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돈황가는 길》 《나를 찾는 붓다 기행》 《정찬주의 茶人기행》 《뜰앞의 잣나무》, 그리고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 등을 썼다. 1996년 행원문학상, 2010년 동국문학상, 2011년 화쟁문화대상을 수상했다.

 

2권
-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추어라

심우도
동구불출
확철대오
도인이 부르는 노래
화광동진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추어라

‘사바세계를 무대 삼아 한판 신나게 놀아보는 연극이 바로 우리 삶이다!’
수행자의 틀에 갇히지 않고 거침없이 도를 굴린 대자유인 경봉 큰스님 이야기


한국 근현대 불교사에 큰 획을 그었던 큰 스님이자 당대의 선지식 경봉 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장편소설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추어라』가 출간되었다. 20여 년 동안 명상적 산문과 불교적 사유의 소설을 꾸준히 발표해온 작가 정찬주가 5년에 걸친 취재와 자료 수집, 집필 과정을 거쳐 완성한 작품이다.
경봉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본격적으로 담아낸 최초의 장편소설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추어라』는 불교와 경봉 스님에 대한 제반 지식은 물론이고, 선(禪)이 무엇인지, 멋들어지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유일무이한 구도소설이다.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추어라』는 크게 두 줄기의 이야기 구도로 뻗어나간다. 경봉 스님이 선방에서 치열하게 정진하는 ‘수행 이야기’와, 깨달음을 이룬 후 그 깨달음에 갇히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는 ‘설법 이야기’가 그것이다. 모든 수행자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진리를 구하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경지가 소설의 이중구조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상구보리는 구도 성불을 위한 선(禪)의 길, 즉 수행 이야기고, 하화중생은 중생 제도를 위한 자비의 길, 즉 경봉 스님이 대중에게 선풍을 크게 떨친 이야기다.
작가는 치밀하고 찬찬하게 경봉 스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나간다. 혜월, 만해, 효봉을 비롯한 근현대 선승들과 위암 장지연 등 많은 인물들과 깨달음과 불법을 폭넓게 교유하며 쌀가마니로 두 가마니 분량의 편지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 경봉 스님의 소중한 자료 등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명당 스님’은 실제 경봉 스님을 시봉했던 현 통도사 극락암 선원장인 명정 스님이며, 2권에 나오는 ‘극락심 보살’은 작가에게 소중한 이야기 자료를 제공했던 실존 인물이다. ‘노사의 진면목이 굴절되어 있거나 왜곡되지 않을까 하고 노사를 시봉했던 상좌로서 노심초사했다’고 술회하는 명정 스님은 완성된 소설 원고를 읽고 ‘경봉 스님이 옆에 계신 듯 생생하게 환생시켜 놓고 있다’고 탄복했다.


누구에게나 깨침의 길 제시한 선지식 경봉(鏡峰) 스님
어머니 여읜 열여섯 소년, 삶과 죽음 의문 품고 출가,
참선 고해 십여 년… 떠는 촛불 속에 억겁의 의문을 찰나에 녹이다.


189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경봉 스님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고 삶과 죽음에 의문을 품고 16살에 출가했다. 출가 전 이미 한문에 조예가 깊었고, 출가 뒤 강원까지 마친 경봉은 스승 성해 스님의 신임을 받아 행정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화엄경>에서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반 푼어치의 이익도 없다[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는 구절을 읽고 크게 발심하였다. 남의 글이나 읽는 서생살이를 치우고 스스로 구도의 참맛을 보고 싶었다. 23살이던 1915년 통도사를 나온 그는 가야산 해인사 선방으로 찾아들었다. 그러나 스승 몰래 도망쳐 나온 그를 반긴 것은 졸음과 망상뿐이었다. 그때마다 허벅지에 피가 나도록 못으로 찍고 계곡에서 얼음을 가져와 입에 물었다. 그리고 기둥에 머리를 박아 이마에 피가 철철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래도 집중이 안 될 때는 뒷산에 올라가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처절한 싸움이었다.
스승이 ‘빨리 돌아오라’고 사람을 보내자 경봉 스님은 참선정진을 거듭하기 위해 다시 직지사로, 금강산 마하연사로, 안성 석왕사로 옮기며 참선에 몰두했다. 그는 어느 정도 화두에 몰입할 수 있게 된 30살이 넘어서야 통도사로 돌아왔다. 이곳에서도 정진을 쉬지 않던 그는 36살 되던 해 겨울 갑자기 벽이 무너지듯 시야가 툭 트이면서 오묘한 일원상만이 드러나는 경지를 체험했다. 그래도 쉬지 않고 정진한 지 20여 일 뒤 새벽 두시 반 문틈을 파고든 바람에 촛불이 ‘파파파팟’ 소리를 내며 춤추는 모습을 본 순간 억겁의 의문이 찰나에 녹아버렸다.


이왕 사바세계에 왔으니
근심걱정 놓아버리고 한바탕 멋들어지게 살라.


대도(大道)를 성취한 경봉 스님은 통도사 주지 등을 역임하고, 1953년 62세에 극락호국선원 조실로 추대되어 전국에서 찾아오는 선승들을 지도하며 선풍을 크게 떨쳤다. 경봉 스님은 언제나 온화하고 자상했으며,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로 일관해, 열려진 방문에는 언제나 구도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82세 때부터는 아예 일요일에 정기법회를 열었고, 90을 넘어 부축을 받으면서도 법상에 오르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법문을 듣는 청법자는 언제나 1천 명을 밑도는 일이 없었다. 경봉 스님은 법문이나 게송을 내림에 있어 언제나 ‘자기 목소리’를 냈다. 대다수의 선사들이 중국의 조사어록이나 염송 등에서 차용해 설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던 현실에서 선사 자신의 안목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선구자적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님의 가풍은 참선과 불학, 염불, 기도, 다도 등 불가의 모든 방편이 한데 어우러진 참으로 깊고도 넓은 ‘화엄의 바다’였다. 스님은 중생들이 힘든 삶을 고백하면 “이왕 사바세계에 왔으니 근심걱정 놓아버리고 한바탕 멋들어지게 살라”고 하셨고, 수좌들이 공부가 안 된다고 물어 오면 당신의 수행담을 들려주시며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보라”고 말했다.
세수 91세 되던 1982년 7월 17일, 시자 명정 스님이 “스님, 가시면 보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 스님의 참모습입니까?” 하고 묻자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대문의 빗장을 잠그듯 열반에 드셨다.


위엄이 있기는 늙은 사자 같고 마음은 훈훈한 봄바람 같으며,
주장자로 머리통을 내리칠 만큼 엄격했지만 한밤중에 알사탕을
갖다 줄 정도로 자애로웠던 자비의 화신 경봉 스님의
깊고 넓은 ‘화엄의 바다’ 같은 생애와 사상.


경봉스님이 장터에서 울긋불긋한 그림을 그려 주장자에 달고 요령을 흔들면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대들도 불법을 알게 되면 참으로 멋들어지게 살 수 있지’ 하고 구수하게 법문을 하다가 지루할 만하면 창을 했던 경봉 스님은 언제 어디서건 거침없는 대자유인이었다. 가을걷이 때는 일꾼들이 논에서 몰려와 자리를 뜨지 않자 주인이 달려와 “일꾼들이 스님 얘기를 다 듣다가는 추수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통사정을 할 정도였고, 전쟁 중 통도사 극락암에서 법회가 열리면 국군과 공비가 함께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다.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지조차 모르던 그들은 법문에 감화를 받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말았다.
또한 스님은 피를 토하며 떠도는 폐병 환자를 자신의 처소로 데려와 수년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결국 부처님의 품안으로 오게 만든 자비의 화신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수행에 있어서는 냉정하게 용맹정진하였다. 겨울 내내 입안에 얼음을 물고 수행하다가 입안이 다 망가지고, 졸음을 쫓기 위해 목을 매단 채로 좌선을 했으며, 자결할 각오로 6개월 동안 누에고치처럼 들어 앉아 정진하는 등 인간 정신의 극점을 넘어선 치열한 수행을 한 끝에 문 없는 문[無門關]에 들었다.

생전에 경봉 스님은 누가 친견하러 오면 곧잘 이렇게 물으셨다.
“여기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면 노사께서 껄껄 웃으며 말씀하셨다.
“대문 밖을 나서면 거기는 돌도 많고 물도 많으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도 말고 물에 미끄러져 옷도 버리지 말고 잘들 가거라.”
서툰 법문은 어렵기만 하고 고담준론은 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인데, 노사께서는 사람의 정신을 격동시켜 생생하게 산 정신을 불러 일깨워 주셨던 것이다.
_통도사 극락원 선원장 명정 스님 추천의 글 중에서

누가 나에게 “경봉 스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스님은 지혜를 구하려는 사람에게는 문수보살 같은 분이셨고, 희망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관세음보살 같은 분이셨고, 편안을 얻으려는 사람에게는 지장보살 같은 분이셨다고. 여기다가 극락암을 찾는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맑고 향기로운 차 한 잔을 권하시던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스님이었다고. _저자의 말 중에서